英왕실 훈장 받은 北인권운동가… “2500만 北주민에 관심 필요”

미국 북한 인권단체 링크의 박석길 한국지부장 / 사진=데일리NK

지난 5일 미국 북한인권단체 링크(LiNK)의 박석길 한국지부장이 영국과 한반도 관계 증진에 기여한 (for services to UK-Korean relations) 공로, 특히 탈북민과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일한 공로로 영국 왕실의 국가공로훈장(MBE)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로부터 나흘 뒤, 서울 중구에 위치한 링크 한국지부 사무실에서 만난 박 지부장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는 멋쩍은 듯 웃어 보이더니 “보이는 곳에서 활동해서 운 좋게 (훈장을) 받은 것이다. 지금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열심히 북한인권 활동을 하는 분들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한국계 영국인으로 어릴 적부터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던 그는 지난 2011년부터 링크에 몸을 담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을 위한 활동에 뛰어들었다. 그 중에서도 탈북민 구출 활동에 힘을 쏟아 지금껏 총 1000명이 넘는 탈북민을 한국에 데려올 수 있었다.

다만 그는 “여전히 국제적으로는 ‘북한’이라고 하면 김정은과 핵, 비핵화에만 관심을 두는 것 같다”며 북한 주민과 인권이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안타까움을 표했다. 국제적으로 북한의 비핵화 문제와 관련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북한 주민들의 인권 문제는 정체되고 있는 상황에 아쉬움을 내비친 것.

그러면서 박 지부장은 “지속가능하고 효과적인 대북정책을 실행하려면 북한의 지도자와 핵무기에만 집중하기보다 2500만이라는 북한 주민들과의 교류, 왕래, 소통 등 여러 가지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며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북한 주민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석길 링크 한국지부장과의 인터뷰 일문일답.

-최근에 축하를 받을 일이 있었다. 영국 왕실로부터 공로 훈장을 받았다는 소식이 한국에도 전해졌는데, 소감을 묻고 싶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부끄럽다. 물론 영광이면서 부끄러운데, 막상 받게 되니까 아무도 모르는 곳곳에서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 없이 고생하고 어떨 때는 가족조차 모르게 투쟁하는 동지들이 먼저 생각이 났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많은 곳에서 북한주민들의 인권을 위해 고생하는 분들이 있지 않나. 어쨌든 나는 보이는 곳에서 활동을 하다 보니 운 좋게 받게 된 것 같은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하는 분들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은 마음이다.”

-지금껏 북한 주민들의 인권 신장을 위해 활동한 공로를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셈인데.

“일단 영국 정부와 영국 왕실이 인정해줬다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영국도 북한 또는 북한인권과 북한 난민에 대해 관심이 없진 않다. 다만 여전히 국제적으로는 ‘북한’이라고 하면 김정은과 핵, 비핵화 이런 것에만 관심을 두는 것 같다. 그래서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북한 주민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북한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최근에는 핵 문제에 가려 뒤로 밀리고 있는 듯하다.

“북한인권에 대한 관심은 유엔에서 COI(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가 나오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성호 (나우) 대표 등 탈북한 분들을 만나기도 하면서 관심이 많아졌는데, 지난해 한국과 미국 정부가 국제적으로 북한과 외교적인 협상을 하면서 인권에 대한 언급이 많이 줄어들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부분이 많이 안타깝다. 인권 문제가 정체화되는 것이지 않나.

실제로 작년 말에 몇 년 동안 해오던 유엔 안보리 북한인권 관련 회의가 열리지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큰 틀에서 보면 북한과의 외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물론 외교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외교를 하면서도 북한 주민들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비핵화만 이야기하다보면 지속가능한 대북정책이 되기 어렵지 않을까. 지속가능하고 효과적인 대북정책을 실행하려면 북한의 지도자와 핵무기에만 집중하기보다 2500만이라는 북한 주민들과의 교류, 왕래, 소통 등 여러 가지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링크’는 전 세계적으로 탈북민 구출 활동을 해오고 있다. 북한의 단속과 감시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점차 탈북이 어려워지고 있지 않나.

“해마다 어려워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특히 재작년이 가장 어려웠는데 그 때 안타깝게도 중국에서 붙잡힌 북한 난민들이 정말 많았다. 작년에는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런 현상이 걱정도 되고 우려도 된다. 그렇지만 작년에도 비용과 리스크가 아무리 커도 탈북하는 분들이 있었고 중국에 있던 분들이 한국에 들어오기도 했다. 그래서 올해는 걱정 반, 희망 반인 상태다.”

-구출 활동을 하는 데 어려운 점 또는 힘든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개인적으로는 중국에서 탈북민이 잡혔다는 연락을 받을 때가 가장 힘들다. 물론 그 소식을 듣게 되면 최선을 다하고 여러 가지를 시도하지만 너무나 안타깝게도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가장 힘들고 마음이 아프다.”

-그럼에도 이 일을 꾸준히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우리는 북한 주민들이 가진 잠재력에서 희망을 보고 있고 또 먼저 온 탈북민을 통해서도 희망을 얻고 있다. 나는 우리가 사는 동안 북한 주민들이 꼭 자유를 성취하고 북한이 열리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북한이 개방되고 주민들이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하고, 그 아름다운 날을 하루라도 앞당기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북한 주민들에게서 얻는 희망과 기대감, 또 사명감이 이 일을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구출활동을 해오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례라기보다는 감사할 때가 있는데, 북한에는 의사표현의 자유가 없으니까 나온 지 얼마 안 된 분들이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와 이야기를 하다가 조금 편해지면 북한 체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하고 싶은데 표현을 잘 못 하는 거다. 그들은 ‘이런 것은 혼자만 생각했지, 표현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랬던 그들이 우리와 이야기를 하면서 처음으로 자유롭게 의사표현을 할 때가 가장 감사한 것 같다.”

-작년에 ‘장마당 세대’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고 개봉도 했다. 어떻게 만들게 됐고 또 이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바는 무엇인가?

“일단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장마당 세대를 세계에 알려야겠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북에서 온 동생들이 북한 세대의 변화에 대해 설명해줬고 그러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장마당 세대에 관심을 갖게 됐다. 동생들은 ‘형, 우리는 부모님 세대와 달라’ ‘젊은 세대가 변하고 있어’ ‘우리 세대는 기성세대와 다른 점이 많아’라고 했는데, 나는 이것이 곧 북한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측면이 될 수 있고 지금의 북한 사회를 효과적으로 설명하려면 이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 세계 어디든지 도시의 청년들이 변화의 선두에 있잖나. 이것은 북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북한도 사회적·문화적·경제적 변화가 있는데 그 변화의 중심에 청년들이 있고 앞으로도 중요한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북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와 똑같은 보통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줘서 북한 사람들에 대한 공감능력을 높이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북한 사람들의 어렵고 힘들고 아픈 경험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가능성과 잠재력과 같은 긍정적인 부분도 다루고 싶었다. 한 마디로 북한 주민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려고 했다. 나중에 영화를 본 사람들이 ‘이 다큐멘터리를 보니까 여기 나오는 8명의 청년들이 내 친구 같았다’ ‘영화를 보다보니 이 사람들이 나와 친구가 된 그런 느낌이 들었다’는 말을 해줬는데, 이것이 가장 감사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북한 주민들과 실상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도는 낮다. 아쉬운 마음이 들 것 같은데.

“그렇다. 지난 50년 간 한국에서 거대한 정치·경제·사회적 변화와 발전이 있었지 않나. 그런데 앞으로 50년은 북에서 엄청난 변화와 개방, 발전이 있을 것이다. 가능성만 있는 게 아니라 나는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교류와 왕래가 있을 것이다. 북의 2500만 명 한국 5000만 명이 교류하고 왕래할 때 우리가 얼마나 그들과 공감할 수 있는지가 훨씬 중요해질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의 큰 과제라고 생각한다. 북한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도 필요하지만 북한 주민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북에서 먼저 오신 분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나는 이것이 지금 나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한다.”

-장기적인 비전을 이야기했는데, 조금 범위를 좁혀서 올해의 활동계획을 묻고 싶다.

“그동안 끈기 있게 해온 일에 주력하려고 한다. 작년에도 저희가 320명의 탈북 난민과 동반 자녀들을 모셔올 수 있었는데 올해 탈북이 더 어려워지더라도 시도하는 분들은 있으니 그들을 잘 모셔오려 하고 있다. 지금까지 해온 것을 계속 꾸준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에 먼저 온 탈북민 정착 문제에도 더 신경을 쓰려고 한다. 입국 후 1~2년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데 정부차원에서 하기 어려운 심리적인 지원들을 모색해보려고 한다.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정체성을 찾고 자존감을 심어주는 데 도움이 되는 일, 예를 들어 탈북민과 함께 제3자를 위한 자원봉사 같은 것들을 더 많이 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