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北공작원 “나는 반쪽짜리 한국인”

“주민등록증하고 운전면허증도 받았는데 여권만은 안된다는 겁니까.”

탈북 공작원 출신 이춘길(가명.35)씨는 최근 여권 신청이 반려되면서 실의에 빠졌다. 무엇보다 중국에 나가서 지금은 생사도 모르는 북쪽 가족을 찾아보겠다는 계획이 물거품이 됐기 때문이다.

함경북도 무산이 고향인 이씨는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의 지시를 받고 중국에서 암약했던 공작원이었다. 그의 주된 임무는 북한에서 중요 직책에 있다 중국으로 탈북한 인사들의 소재를 파악, 다시 북한으로 납치해 데려오는 역할이었다.

이씨는 북한 당국에서 남한의 정보기관이 개입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던 반체제조직 민족통일연합회(민통련) 와해 공작을 성공시킨 것을 자신의 대표적 활동으로 꼽았다.

그는 탈북자, 중국인, 조선족 등으로 구성된 민통련 조직원으로 위장 잠입해 98년 9월 총책인 주모씨 등을 북한으로 납치하고 조직을 일망타진한 공로로 국기훈장 1급을 받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능력있는 공작원으로 인정받았던 그도 고향에 돌아가서 평소 알고 지내던 한 여성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출생지는 백두산 밀영이 아니라 러시아”라고 말실수를 하면서 신변에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또 2000년 1월에 발생한 재미교포 김동식 목사의 납북 사건을 남한의 한 언론사 베이징 특파원에게 제보했던 것도 그였다.

중국을 떠돌다 2000년 7월 중국의 정보기관에 체포돼 북송되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평양으로 소환된 그는 공작원으로 혁혁한 공을 세운 전력을 인정받아 2000년 12월 다시 공작 임무를 받고 중국으로 파견되기는 했지만 99년 11월부터 주중 한국 공관에 수차례 귀순 의사를 타진하는 등 마음은 이미 남한에 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이씨는 수차례 중국에 있는 한국 공관의 문을 두들기고 귀순 의사를 밝혔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고 했다. 결국 그는 2003년 1월 감옥에라도 가겠다는 각오로 위조여권을 가지고 인천국제공항에 입국해 귀순 의사를 밝혔다. 이후 15개월간 관계기관의 집중적인 조사를 받고서야 작년 4월 비로소 남한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이씨는 자신 때문에 북한으로 끌려가 처형됐던 탈북자들을 생각하면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았다고 했다. 자신은 김 목사 납치에 관여하지 않았지만 조선족 납치범 류모(35)씨의 국내 잠입 사실을 제보하고 수사에 적극 협력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는 “김 목사는 탈북자들에게 500달러씩 쥐어 주고 성경책을 북한으로 들여보내곤 했던 선교 활동이 남한 정보기관의 공작으로 오인돼 납치된 것”이라고 증언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그는 제보 포상금도 받았고 간첩 혐의로 장기간 조사를 받았지만 지난 6월 기소유예라는 관대한 처분을 받고 마음의 짐을 덜기도 했다.

명색이 귀순 간첩이지만 그는 여느 탈북자들과 마찬가지로 3개월마다 100만원 정도의 정착금을 받으면서 호구지책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자신의 입국을 도왔던 한 지인이 운영하는 작은 회사에 적을 두고 도움을 받고 있지만 해외출장에 대비해 신청한 여권이 나오지 않아 눈칫밥을 먹고 있다고 한다.

이씨는 자신과 같은 공작원 출신으로 자유롭게 일본을 드나들면서 북한의 실상에 대해 언론 인터뷰 및 증언 활동을 벌이고 있는 안모씨를 거론하면서 여권 신청이 반려된 것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신처럼 특별관리 대상으로 분류됐지만 자유롭게 외국을 드나들고 있는 동료 탈북자들이 부럽기만하다.

이씨는 “이제는 공작원 출신이라는 어두운 과거를 벗고 대한민국의 평범한 시민으로서 새롭게 태어나 떳떳하게 살아보고 싶지만 아직까지 나는 반쪽짜리 국민인 모양”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