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HEU→UEP 어물쩍 北과 타협하나?

북핵 6자회담이 18일 베이징(北京)에서 개막한 가운데 2·13 합의 2단계의 최대 쟁점으로 지적돼온 ‘고농축우라늄'(HEU) 문제를 미국이 ‘우라늄 농축’으로 표현해 이 문제에서 한 발 빼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6자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이날 “북한이 2단계에 해야 할 두가지 일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모든 핵프로그램의 완벽한 신고”라면서 “그것은 우라늄 농축(uranium enrichment) 문제로 돌아간다”라고 표현한 것이 이 같은 추측을 낳게 하고 있다.

힐 차관보는 지난 16일 서울에서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도 “‘HEU’란 용어는 핵무기 제조에 사용되는 것을 말하고 ‘농축우라늄’은 고농축 방식으로 될 수도 있고 저농축 방식으로도 될 수 있는 것”이라며 굳이 HEU라고 규정하지 않고 어떤 것이든 정확한 신고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었다.

HEU는 핵연료나 핵무기로 사용하기 위해 천연 우라늄을 농축시킨 것으로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당시 미 국무부 차관보의 방북때 ‘HEU 보유 암시 발언’으로 제2차 북핵위기의 발단이 됐다. 때문에 HEU 문제는 북핵 폐기 로드맵 완성을 위한 키워드로 인식돼 왔다.

이런 가운데 힐 차관가 HEU가 아닌 ‘우라늄 농축’이라고 표현 한 것은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북한에 활로를 열어 줌으로써 2·13 합의 이행을 위해 ‘타협점’을 모색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이는 ‘농축우라늄’이란 용어를 사용할 경우 핵무기 제조를 위한 ‘고농축우라늄’의 가능성과 연구용 ‘저농축우라늄'(LEU)의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HEU 문제를 제기해 온 미국이나 그동안 존재 자체를 부인해 온 북한이 타협점을 모색할 수 있는 명분 축적용 아니냐는 지적이다.

북한의 HEU 프로그램 추진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 파키스탄으로부터 우라늄 농축을 위한 원심분리기를 도입(압둘 카디르 칸 증언)했으며, 원심분리기 복제를 위한 고강도 알루미늄 튜브를 밀반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미국 정보당국은 북한이 원심분리기를 1998년 파키스탄에서 구입해 2004년 7~8월경 가동을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더욱 확실한 것은 북한이 1998년을 전후해 파키스탄에서 원심분리기 제작에 필요한 고강도 알루미늄관을 집중적으로 구입했다고 지적해 왔다.

이와 함께, 힐 차관보는 6자회담 개막을 앞둔 17일 북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만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과 관련한 일부 증거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제시한 UEP 관련 증거는 주로 북한이 도입한 원심분리기에 관한 것으로, HEU 관련 자료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HEU 관련 증거를 먼저 제시하면 해명하겠다’는 북측의 주장에 이를 숨기는 데 역이용할 수 있다며 자료 제시를 미뤄왔다.

UEP 관련 자료를 제시한 것은 이라크 문제로 곤욕을 치루고 있는 미국이 북핵 문제 해결로 성과를 내기 위한 전략적 판단이라는 지적이다. 연내 불능화를 목표로 하는 미국이 시간 낭비를 최소화 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할 수 없는 미국이 HEU 문제를 고집할 경우 북측이 2.13 합의의 틀을 깰 수 있는 명분만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듯 하지만, 정지척 실리를 위한 원칙 없는 타협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