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BDA 카드’ 스스로 발톱 빼고 北核폐기 가능할까?

베이징에서 BDA(방코델타아시아) 관련 2차 실무회의가 31일 종료된 이후, 미 당국자들의 입에서 6자회담 낙관론이 흘러나오고 있다.

2차 실무회의 직후 미국측 수석대표인 대니얼 글레이저 재무부 부차관보는 “북측으로부터 유용한 정보를 많이 확보했다”면서 “이제 기존 자료와 맞춰본 뒤 향후 적절한 길을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톰 케이시 미 국무부 부대변인도 “이번 실무회의에서 유익한 정보교환이 있었다”고 거들었다.

글레이저 부차관보는 “BDA 계좌들이 (북한의) 돈세탁 용도로 활동됐다는 미국의 우려가 북측과의 대화를 통해 입증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측이 돈세탁 사실이나 위조지폐 문제를 시인했다는 정황은 아직까지 포착되고 있지 않다. 겉으로만 보기에는 별다른 합의 없이 끝난 이번 회의 결과를 놓고 미국측이 ‘유익한 협의’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미국은 그간 북한이 일명 ‘슈퍼노트’라고 불리는 100 달러짜리 위조지폐를 제조하기 위해 위조방지용 잉크까지 똑같이 사들여 사용했다고 주장해 왔다. 따라서 북한에 불법행위 일체를 시인하고, 위폐 제조에 쓰인 동판과 장비 등을 파기한 증거까지도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발언을 보면 ‘북핵 문제 해결’이 우선이라는 미 국무부와, ‘위폐 문제는 법대로’라는 재무부 사이에 일정한 의견 조정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임기가 2년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부시 행정부가 BDA 문제로 발목이 잡혀, 정작 중요한 북핵해결에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북핵문제를 악화시킨 정권으로 낙인찍히는 것 아니냐는 딜레마에 빠져있다는 관측도 유력하게 나온다.

따라서 위조달러 제조 등 북한의 불법행위에 대한 제재나 처벌보다는 재발 방지에 초점을 맞춰 6자회담에 집중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또 미국이 지금까지 북한에 요구해온 위폐제조 행위에 대한 시인을 받지 않은 채 위폐 재발을 방지하는 방법을 찾기로 합의함으로써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는 워싱턴 외교소식통의 전언도 있다.

부시 행정부는 지난 중간선거 패배 이후 이라크 정책을 비롯해 대외정책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북정책 기조에도 변화가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행정부 내에서 네오콘이 퇴조하고, 대북협상파에 힘이 실리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이같은 전망은 그동안 북한과는 6자회담의 틀안에서만 대화하겠다던 미국이, 입장을 바꿔 1월 중순 베를린에서 북한과 양자회동을 하면서 변화가 감지됐다. 이 회담에서 6자회담 재개에 큰 걸림돌로 돼 왔던 BDA 문제에 대해 일정한 해결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동안 북한을 향했던 제재행위 중 유일하게 효과를 봤던 금융제재 문제에 미국이 한걸음 뒤로 물러날 경우 ‘북한의 모든 핵프로그램 폐기’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1994년의 ‘제네바 합의’ 수준 이상을 넘어설 수 있겠느냐는 현실적인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지난 29일 “다음 6자회담이 1994년 제네바 북미기본합의와 유사한 합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나, 그것은 예비적인 것일 뿐 마지막에는 더 멀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은 31일 “우리의 목표는 2002년 상태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모든 핵프로그램을 폐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같은 자신감의 발로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알 수가 없다. 차기 6자회담이 됐든, 차차기가 됐든 94년과 비슷한 수준의 합의서로는 결코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한 94년의 경우 북한이 소량의 플루토늄만 가지고 있었지만, 2007년 지금은 핵실험까지 마친 ‘핵보유국’으로서 예전과는 많이 다른 상황이다.

지금으로선 94년 당시 합의했다 중단된 매년 중유 50만t 제공과 경수로 제공 등 북한은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6자회담 관련국들이 내밀 수 있는 유인책은 그리 많지 않다. 또 북핵폐기 과정에서 플루토늄뿐만 아니라 미국이 직접 제기한 고농축 우라늄 문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손에 쥐고 있는 ‘BDA 카드’를 북한에 쉽게 넘겨줄 경우 북핵 게임의 추는 북한으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

만약 6자회담에서 북한이 ‘비핵화 초기조치 이행’ 제스처를 취할 경우, 미국은 섣부른 낙관론을 펴며 북에 끌려만 다니다 실패한 12년 전의 과오를 되풀이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그동안 정권유지를 위해 군사적 긴장유발→협상→경제원조→긴장유발→협상→경제원조 사이클을 거듭해왔다. 핵포기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북한이 종국적으로 핵을 완전히 폐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때문에 부시 행정부 정권 말기라고 해도 조급한 성과주의에 매달리는 것은 위험하다. 미 국무부는 부시 행정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안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북핵의 완전한 폐기를 위해 좀더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안목이 무엇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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