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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BDA(방코델타아시아)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기로 한 것은 북한 정권을 더 이상 타도하거나 교체의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겠다는 정책 변화의 산물이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6일 ‘통일연구원 개원 16주년 기념 학술회의’ 발제자로 나서 부시 미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선회한 배경을 설명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유 교수는 “부시 대통령은 수백만의 주민들이 굶어 죽는 상황에서 독재자 김정일이 외부와 단절된 채 폐쇄 정권 유지에만 혈안이 돼 있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며 “급기야 제 2차 북핵 문제가 발생하자 북핵 해결은 북한 정권의 교체를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란 인식을 굳히게 됐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북한 정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지만 북한 핵문제 해결이라는 보다 긴급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 정권에 대한 입장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분석했다.
유 교수는 또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정일 정권과의 대화와 협상은 불가피하며 동시에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북한 정권의 성격이 보다 덜 위험한 정권으로 변화할 수도 있다는 입장으로 선회하게 됐다”면서 “정권 교체 보다는 정책의 변화를 모색하기로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의 전격적인 체제 개혁이 단행되지 않는 한 부시 행정부 임기 내 북미 관계정상화가 완료되거나 부시-김정일 단독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은 낮다”며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고 북한이 인권문제 개선에 진전을 보이더라도 북미관계가 즉각 정상화되는 것은 아니다”고 관측했다.
그러면서 유 교수는 “북한과 같이 절대 권력자가 중장기 전략 목표를 모든 가용한 자원을 자유자재로 동원하는 체제와 대등한 입장에서 협상하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부시 행정부로서는 임기 내 북핵 완전 해결이나 관계정상화 등을 외교적 업적 달성을 위한 목표로 설정하지 말 것”을 주문하며 “기대치를 한층 낮추고 보다 신중한 자세로 북핵문제 해결과 관계정상화 문제를 전략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했다.
반면 서재진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연구센터 소장은 “미국과의 수교는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 적성국교역금지법을 해제 받아서 경제제재에서 풀리게 된다”며 “미국이 기꺼이 수교까지 해주겠다는 상황에서 ‘벼랑끝 전술’로 핵보유를 고집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핵폐기 가능성게 무게를 뒀다.
그는 “북한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협상수단은 핵무기이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지렛대로 활용을 하겠지만 결국은 큰 전략적 결단을 하게 될 것”이라며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얻어내기 위하여 결국 핵무기를 포기하는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홍용표 한양대 교수는 “김정일 정권이 존재하는 한 북핵의 완전 폐기나 개혁개방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미국의 규정력이 엄청 큰 힘을 가지고 있다 해도 북한 핵을 포기하게 할 정도의 규정력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서 소장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했다.
홍 교수는 “미국의 이상적인 목표는 북한 정권의 교체이지만, 현실 목표는 핵 확산만 막을 수 있다면 김정일 정권도 포용하고 가는 것”이라며 “문제는 미국이 핵을 가진 북을 껴안고 가려고 했을 때 우리 정부가 이를 막을 힘이나 의지가 있는 것인지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무현 정권이 속으로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겉으로 들어나는 것만 놓고 봤을 때는 (미국을 설득하려는 의지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