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핵신고 일단 수용…“검증서 판 깨질 수도”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서 제출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면서 북한이 과연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하고 성실한’ 핵 신고를 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이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제출할 신고서에는 ▲플루토늄 생산 관련 핵시설 ▲그동안 추출한 플루토늄 총량 ▲5MW 원자로 가동일지 등이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다.

원자로 가동기록은 북한 핵무기의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 생산량을 ‘검증’할 수 있는 핵심자료로, 북한은 지난달 말 방북한 성 김 미 국무부 한국과장에게 미국 측에 이를 제공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신고서에는 또한 미국이 요구한 핵탄두(핵 폭발장치)의 수는 담기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플루토늄 생산량과 사용현황을 정확하게 제출하면 핵 폭발장치의 개수 등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 측이 이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김성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북한은 과거에도 핵무기 개수는 밝힐 수 없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며 “핵무기 개수가 공개되면 자신들이 핵무기 제조기술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개수를 신고하지 않더라도 추출량만 있으면 탄두수를 추정할 수 있기 때문에 핵심쟁점은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 플루토늄 추출량 차이, 핵신고 걸림돌 되나?=이외에도 북한은 지금까지 주장해왔던 대로 플루토늄 생산량을 30kg으로 명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지난해 말 방북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에게 플루토늄 생산량은 총 30kg이며, 이 중 핵개발에 18kg, 2006년 10월 실시한 지하핵실험에 6kg을 각각 사용했다고 사용처를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 등이 추정하고 있는 북한의 플루토늄 생산량은 40~50kg으로 북한의 주장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가동기록 등을 면밀히 검토하면 차이가 생기는 이유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현 단계에서 문제 삼을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박영호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도 현재 상황으로서는 북한이 추출한 플루토늄 양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며 “우선 북한이 제출한 신고서를 받되, 검증 과정을 통해 밝혀내게 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이러한 차이에 대해 합의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로써 6자회담 합의에 따른 북핵 폐기 2단계가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 아니냐는 관측이 우세하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핵 프로그램 신고서에 대한 미북간 합의내용을 봤을 때 북핵 폐기 2단계를 마무리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며 “최근 미국의 잇단 발언을 보면 핵 신고에 이은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가 가까운 시일 안에 이뤄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밝혔다.

그는 “시기가 늦어지면 미국의 대선기간과 맞물리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북한이 신고서를 제출하는 기간을 이 달 안으로 잡으려는 것 같다”고 전망했다.

김 연구위원은 “어쨌든 북한은 시리아와의 핵 협력설이 불거진 가운데서도 이 문제에 계속 침묵하고 있다”며 “북한이 백악관 성명에 대해 공격적인 반응을 보였다면 문제가 복잡해지겠지만 침묵한다는 것 자체가 미북간 사실상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이 나왔다는 것을 뜻한다”고 밝혔다.

그는 “검증 문제는 미국이 북한의 핵 신고 이후나 3단계 핵폐기 단계에서도 추가적으로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며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2단계가 마무리 안 되는 상황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박영호 연구위원도 “북한의 핵 신고가 100% 만족스럽지는 않겠지만 부시 행정부 입장에서는 핵폐기 협상을 진척시켜야 하고 6자회담 모멘텀을 지속하고 싶기 때문에 받아들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신고 목록과 가동기록 일지를 보고 6자회담 틀 내에서 검증기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라며 “검증을 통해 진척해나가면서 핵폐기에 대한 돌파구를 마련해보자는 뜻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 검증과정에서 언제든 판 깨질 수 있어=한편, 미북 양측은 교착상태에 놓은 북핵 협상에 대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불완전한 핵신고에 합의했지만 앞으로 검증 과정을 통해 언제든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송대성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서는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와 플루토늄 생산시설, 그리고 핵 프로그램에 대해 100% 완벽한 신고가 이뤄져야 한다”며 “그러나 지금은 철저한 물리적 신고가 아닌 정치적 협상에 의한 타협에 의해 신고가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 연구위원은 “현재 부시 행정부는 임기 말 외교적 성과를 노리고 있고, 북한 입장에서는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가 절실하다”며 “북한이 지금은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겉으로는 굉장한 성의를 보이고 있는 것 같지만 완벽한 핵 신고와는 거리가 멀다”고 강조했다.

유 교수도 “미국으로서는 검증하는 과정에서 기대만큼의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돌이킬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박 연구위원도 “미국 측의 완전한 양보는 아니다”면서 “북한이 핵 신고를 제대로 한다면 적어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신뢰를 쌓을 수 있겠지만 검증을 통해 틀린 부분이 나온다면 다시 외교적 압박을 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이 현재의 국면을 돌파하기 위한 임시 수단으로 신고까지는 넘어가더라도 검증에서 비협조적으로 나가면 상황은 언제든지 되돌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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