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핵시설 불능화때 추가 에너지 지원”

5차 북핵 6자회담 3단계 회의가 막판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영변 핵 시설 ‘폐쇄’ 수용 대가로 1994년 제네바합의 당시의 중유 50만t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 지원을 요구함에 따라 지원규모와 시기를 놓고 참가국들간 진통을 겪고 있다.

북한은 우선 ‘동결’보다 비핵화 조치의 수위가 높은 ‘폐쇄’ 조치를 이행하기로 했다. 그 대가로 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연간 50만t의 중유를 제공받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북한이 회담을 거듭하면서 2003년부터 받지 못한 것을 고려할 때 이전보다 훨씬 많은 중유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 난관에 부딪힌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아사히 신문은 이와 관련, 북한이 초기이행 조치 대가로 전력 200만kW에 해당하는 에너지 지원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그 동안 북한은 제네바합의에 따라 북한 금호지구에 건설되다 2002년 이후 중단된 경수형 원자력 발전소 2기가 완공됐다면 200만kW의 전력 생산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이번 회담 초기 의장국인 중국은 대북 에너지 지원 방안으로 한국 등 5개국이 5만t씩 지원해, 총 25만t을 제공하는 안을 내놨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은 북한의 조치에 따라 각국이 10만t씩 지원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제네바합의 당시 연간 50만t의 중유를 공급하기로 한 것은, 건설 중이던 5MW원자로와 50MW 및 200MW 원자로 등 영변 핵 시설이 생산할 수 있는 에너지량을 화력발전소에 필요한 중유로 환산한 규모였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이 ‘폐쇄’하기로 수용한 핵 시설 대상도 94년 당시 합의한 영변 핵 시설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북한이 동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폐쇄’ 조치를 수용했다고 해서 몇 배 규모의 중유를 요구하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한국과 미국 등은 12일 북한이 핵폐기 ‘초기이행조치’로 ‘폐쇄·봉인’보다 높은 단계인 ‘핵시설 불능화(disabling)’까지 취할 경우 북한에 제공할 에너지량을 늘려주겠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우리측 수석대표인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상응조치는 북측이 취할 비핵화 조치의 폭, 나아갈 거리, 그 조치에 이르기까지의 속도와 연결돼 있다”고 밝혔다. 영변 핵 시설 정도의 ‘폐쇄’ 조치로는 그 이상의 에너지 지원이 어렵다는 의미다.

북한이 에너지 지원 관련 무리한 요구가 계속되자 5개국간 분담 규모를 놓고 난항을 겪고 있다. 미국은 제네바합의에 속아 8년간 중유 50만t씩을 북한에 제공했던 오류를 다시 범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일본도 납치 문제 해결 전에는 지원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우리 정부는 “대북 에너지 지원을 단독으로 맡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면서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에너지 지원 방안과 관련해 주도적 역할을 해나간다는 판단이다. 지원 규모나 분담 문제를 제외한 지원 순서에 있어 가장 먼저 지원에 나설 수 있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참가국간에는 한국이 가장 많은 양을 부담하거나 단독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북한이 2개월 안에 핵 시설을 폐쇄하고 한국은 중유를 제공하며, 미국은 관계정상화 논의를 시작하는 쪽으로 회담이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북한이 만약 전력 200만kW를 요구한다고 했을 경우, 이를 중유로 환산하면 300만t 정도로 약 9억 달러에 해당한다. 이에 대한 제공을 한국이 전담하게 된다면 매년 8400억 원(1달러당 934원)이 들어가는 엄청난 액수다.

이는 미-북간 제네바합의에 따라 한국의 의지와 상관없이 경수로 건설 비용(46억 달러)의 70%의 재원을 부담할 수밖에 없었던 외교력의 부재를 다시 한번 재현하는 꼴이다. 한국은 지난해 5월 경수로 건설 중단 때까지 11억3700만 달러를 투입했다.

이처럼 대북 에너지 지원 문제를 놓고 5개국간 난항이 거듭되자 북한은 11일 오후 열린 6자 수석대표회의에서 13일 평양으로 일단 철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북한으로서는 북핵 폐기 초기단계 이행조치에서 ‘폐쇄’ 조치를 수용했으므로 더 많은 것을 얻어 내기 위한 압박과 동시에 ‘시간 벌기’에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나름의 판단일 수도 있다.

또한 북한은 11일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를 통해 베를린 회동에서 미·북 양측이 30일내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계좌 동결 해제, 60일내 초기이행조치 완료, 미·북관계 정상화 등 초기이행조치에 따른 미국의 경제 및 에너지 지원 등을 사실상 합의했다며 미국을 압박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