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피난민대책회의와 노근리 관계 부인

미 국방부가 30일(현지시간) 노근리 학살 사건에 대한 ’재조사 불가’ 입장을 밝힌 것은 무초 서한에서 밝혀진 피난민 대책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현장 지휘부의 경험부족과 부대내 혼란상에 학살 원인을 돌리는 기존 보고서 입장을 고수하겠다는 뜻이다.

방어선에 접근하는 피난민에 대한 ’1차 경고 사격후 (표적) 발포’ 지침과 노근리 학살간 인과관계를 부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국방부가 연합뉴스의 질문에 보낸 e-메일 답신은 무초 서한이 새로운 사실을 더해주는 게 없다며, 대책회의 개최와 그 결정 사항이 북한 인민군에 악용되는 피난민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무초 서한은 인민군이 군부대 이동 방해, 첩자 침투, 후방으로 침투 후야간 배후 공격 등에 피난민 행렬을 악용하는 바람에 미군측에 커다란 군사적 위협이 되고 있었던 점을 지적했다.

무초 서한은 또 피난민이 미군 방어선 북쪽에서 접근할 경우 우선 경고 사격을 하도록 했다고 밝히며 피난민들이 이런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사전 경고 전단 살포, 한국 경찰의 피난민 통제 등을 취할 것이라는 내용도 들어 있다.

무초 서한은 그러나 당시 대책회의 결정의 중점은 피난민이 적군에 악용되는 상황에서 피난민보다는 아군 보호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초 당시 대사가 “군의 결정들이 불가피하게 내려지고 있다”며 “이 결정들의 시행에 따른 미국내 반향”을 우려한 대목.

당시 결정된 대책을 시행할 경우 무고한 민간인 희생 등 큰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근리 학살에 전장의 혼란과 광기 요소가 있었다 할지라도, 역시 극도의 혼란을 겪고 있을 피난민이 방어선에 접근한다고 총격을 가하도록 지침을 내린 것은 그 부작용을 예상하고 무릅쓰겠다는 인식이 당시 대책회의의 한·미 참석자들 사이에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무초 서한을 발굴한 미 국립기록보관소의 역사 학자 콘웨이 란즈의 책 제목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는 이런 인식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미 국방부가 당초 조사보고서에서 무초 서한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무초 서한에 관한 언론보도 후 누락 배경에 대한 질문에도 일절 답변하지 않는 점 역시 노근리 재조사 논란 거리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워싱턴=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