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탈북자 수용과 동북아 정세

미국이 일반 탈북자 6명의 망명을 받아 들여 ‘뜨거운 감자’인 탈북자 문제의 중심권에 들어옴에 따라 동북아 정세에 적지 않은 영향이 예상된다.

특히 미국의 탈북자 수용 카드는 위폐문제와 이에 따른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로 북핵 6자회담 교착상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한반도와 그 주변의 미묘한 변화에 또 다른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미 2004년에 북한 인권법을 제정해 발효시켰고 그 법에 탈북자 지원과 수용 관련 조항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용’은 이미 예고돼 왔다고 할 수 있다.

탈북자 문제와 관련해 미 행정부의 개입 의지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2002년 국정연설에서도 확인된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이란, 이라크와 함께 북한을 ‘악의 축’으로 명명했고 이어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로 규정하면서 자연스럽게 폭정의 피해자인 탈북자에게 시선이 몰렸던 것.

그러면서 미 의회를 중심으로 탈북자문제 해결의 목소리가 커졌고 급기야 북한 인권법 제정과 발효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그 즈음 6자회담을 통해 북핵논의가 일정정도 진전을 보여가자 미 행정부는 여기에 부정적인 영향이 끼쳐질 것을 우려해 상대적으로 탈북자 문제에 대해 관심을 덜 기울였던 게 사실이다.

미 행정부가 북한이 체제 전복 시도라며 북핵 대화자체를 거부할 것을 염려해 북한 인권법 집행을 미뤄왔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북핵 6자회담이 작년 11월 제5차 1단계 회담개최 이후 6개월 가까이 열리지 못하고 있는데다 북한의 강한 불참 의지로 재개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 지금 미 행정부의 입장은 과거와는 확연하게 달라 보인다.

북핵문제의 우선적 해결보다는 다른 북미 현안에 관심을 쏟는 양상이다.

미 행정부는 작년 9월 촉발된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BDA) 사건 이후 포괄 적이고 치밀하게 북한의 해외 자금줄을 봉쇄하고 있는 가 하면 다음달 8일부터 북한 선박으로 제재를 확대할 예정이다.

특히 북한내 인권 개선을 위한 압박에 부시 미 대통령까지 나서고 있다.

지난 달 28일 한국 국적의 탈북자와 일본의 납북자 가족을 면담한 자리에서 김 위원장을 직접 겨냥, “한 국가의 지도자가 납치를 조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는 등 북한인권 개선 의지를 단단히 밝힌 것이다.

그 즈음 북한 인권문제와 관련해 부시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제이 레프코위츠 미 대북 인권특사는 공개적으로 “북한 난민들의 미국 정착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탈북자 6명의 미국 망명 허용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천기원 두리하나선교회 대표는 7일 기자회견에서 “지난 3월31일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미국측으로부터 탈북자를 난민으로 받아들일 것을 제의받았다”면서 한달여에 걸친 탈북자 6명의 미국행 발단과 과정을 소개했다.

이번에 미국의 일반 탈북자 첫 수용이 우연이 아닌 ‘기획’이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지난달 27일 미 로스앤젤레스 이민법원이 한국 국적을 취득한 탈북자 서재석씨에게 ‘정치적 망명’(political asylum)을 허용했고 그에 대해 미 검찰 당국이 항소하지 않은 점도 미국이 종전과는 달리 탈북자 정책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읽게 한다.

특히 일본 정부도 최근 납북자인 요코다 메구미씨 사건을 정점에 두고 대북 인권 압박 공세의 고삐를 바짝 죄어가는 모양새여서 이와 더불어 미국의 대북 압박의 수위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시선은 이처럼 ‘행동’에 나선 미 행정부의 탈북자정책이 동북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이냐에 모아지고 있다.

우선 미 행정부의 탈북자 정책에 인권문제를 부각시켜 북한을 압박하겠다는 의지와 함께 탈북자를 강제 송환하고 있는 중국을 겨냥한 측면도 없지않다는 점에서 이들 국가의 ‘반작용’이 우려된다.

북한은 아직까지는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미 행정부가 북한 인권법에 명시된 대로 연간 수천만 달러의 비용을 지원하고 탈북자의 미국행 허용 규모를 확대할 경우 자칫 체제 균열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조만간 어떤 식으로든 거부감을 표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이번 미국의 탈북자 수용은 북한 상류층이 보다 나은 삶을 찾아 미국으로 망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심한 동요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도 마음이 편치 않아 보인다. 미국 내에서 탈북자 문제가 급부상하면서 자국이 탈북자를 탄압하고 강제 송환하는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중국이 미국의 탈북자 공세에 맞서 자국내 탈북자 단속 강화와 북중 국경 경계강화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
우리 정부의 탈북자 정책에도 영향은 불가피해 보인다.

미국행이 보다 현실적이고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라는 점에서 탈북자의 미국행 선택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탈북자의 지위도 쉽지 않은 대목이다. 우리 정부는 탈북하는 순간 대한민국 국민으로 보기 때문에 이들이 미국행을 선택할 경우 미 행정부와의 ‘협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그러나 미국 망명길이 열렸다고는 하지만 테러에 대한 우려로 심사가 철저하고 탈북자를 선별적으로 수용할 것으
로 예상돼 미국의 탈북자 수용 정책이 동북아 정세에 큰 영향은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미국이 한해 4만∼5만명을 수용하는 난민정책을 크게 바꾸지 않는 한 탈북자 수용은 ‘조절된’ 수준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미국의 적극적인 탈북자 정책은 위폐에 이어 인권을 매개로 한 고강도의 대북 압박책으로 비친다는 점에서 그 수위가 임계점 이상으로 높아질 경우 북핵 6자회담 재개의 모멘텀 상실을 포함해 동북아 정세 불안으로 이어질 공산이 커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다른 정부 당국자는 “그 어느 때보다 탈북자 정책이 지나친 ‘홍보’보다는 ‘조용한 외교’로 진행되어야 할 까닭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