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중간선거 뒤 유연해진 대북관 `뚜렷’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도 없던 발언들이 부시 행정부에서 나오고 있다.”

서울의 한 외교소식통은 최근 북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유연해진 태도를 두고 이같이 말했다.

지난 7일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고 네오콘(신보수주의)의 상징이던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낙마로 조심스럽게 점쳐졌던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가 점차 가시화되는 느낌이라는 게 외교가의 전반적인 평가다.

이달 중순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미 대통령이 `한국전 종료선언’ 문제를 거론하며 `한국 및 북한 양측과 함께 만나서 (종전을 선언하는 문서에) 서명할 용의도 있다’는 취지의 언급을 한 점이나 지난 28∼29일 베이징에서 사실상 북미 양자대화가 이뤄진 점 등이 변화를 감지하게 만드는 대목들이다.

특히 부시 대통령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인식 변화도 엿보인다는 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남북 양측과 만나 종전 문서에 서명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점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대화 상대로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가능하게 하는 대목이다.

부시 대통령이 과거 북한을 ‘악의 축’ 국가에 포함시키고 김 위원장을 ‘폭군’으로까지 표현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인식 변화로 해석될 수 있다.

베이징에서 이틀간 이뤄진 북미회동에서 보여진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태도에서도 부시 대통령의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가 느껴진다는 평가다.

힐 차관보는 베이징에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의 핵폐기를 전제로 북한에 제공할 각종 인센티브를 설명하면서 시종 `부시 대통령의 뜻’임을 강조했다는 후문이다.

힐 차관보가 제시한 `당근’들도 한국전쟁 종전선언과 체제보장을 포함한 북미 관계정상화, 에너지와 경제 지원, 궁극적으로는 안보리 결의 해제 용의 등 북한이 원하는 내용들이 총망라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회동의 내용을 떠나 회동이 성사됐다는 자체에도 적지 않은 의미가 실린다.

북한이 간절히 원했지만 미국이 꺼리던 북미 양자대화가 사실상 이뤄진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의 주선으로 힐 차관보와 김계관 부상이 자리를 같이한 뒤 우 부부장이 자리를 비켜주는 일종의 `편법’이었지만 북핵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다루려는 미국의 의지를 느끼기에는 충분했다는 평가다.

북한은 김계관 부상이 지난 4월 일본에서 열린 동북아시아협력대화(NEACD)에서 힐 차관보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수차례 표시하고 6월1일에는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힐 차관보를 평양으로 공식 초청하는 등 북미 양자대화를 갈구했지만 미국은 `북핵문제는 6자회담으로 풀어야 한다’는 원칙아래 이를 외면해왔다.

중간선거 직전인 지난달 31일 베이징에서도 이번과 비슷한 형태로 북.중.미 대화가 열려 `6자회담 조속개최’에 3국이 뜻을 같이했지만 현안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이뤄지지는 못해 양자대화로 보기에는 미흡했다.

미국의 이같은 기류 변화는 부시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더욱 직접적으로 표현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일각에서는 북미 외교장관 회동을 비롯해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 북한 고위인사의 미국 방문 등이 검토대상이 될 수 있는 방안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아울러 방북 의사를 강하게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톰 랜토스 미국 하원 차기 국제관계위원장과 상원 차기 외교위원장으로 내정된 민주당 조지프 바이든 의원의 방북이 성사되면 북미관계에 또 다른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미국의 긍정적 메시지에 북한이 반응하지 않는다면 부시 대통령의 대북 유화책이 계속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은 물론이고 국제사회가 북핵폐기라는 대전제를 양보하지는 않을 것임을 북한도 인식하고 상황 개선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미국의 태도 변화가 `늦은 감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끝내 핵실험까지 한 것이 미국의 북한에 대한 `악의적 무시전략’때문이라는 분석에 기반한 시각이다.

한 정부 소식통은 “아직 북핵문제가 어떻게 풀릴 지 가늠하기는 힘들지만 한층 유연해진 미국의 태도가 사태 해결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북한이 핵실험을 하기 전에 이런 태도를 보이지 않은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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