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제재 압박 속 대화 수용

미국은 북한의 핵실험 이전부터 대북 제재와 압박 강화에 진력해왔다. ‘악의 축’ 북한의 불법활동을 소탕하기 위한 대북 금융제재에 골몰하던 터에 북한이 미사일 시험을 강행하자 북한의 ‘돈줄 죄기’는 물론, 과거 제재조치들을 복원시키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하자, 미국 정부 지도자들은 이는 ‘도발적인 행위’로 북한의 고립만 심화시킬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응이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과거와는 다른 세상에 살게될 것’이라는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발언과 ‘북한은 핵과 미래 둘 다 가질 수 없다’는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차관보 등의 경고도 잇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자 미국은 일사천리로 대응했다.

유엔 안보리를 소집해 핵실험 후 불과 닷새만에 유엔 헌장 7조에 따른 대북 제재결의안을 통과시켰다. 15개 안보리 이사국 만장일치로 채택된 대북 제재 결의는 북한에 대한 무기와 미사일 수출입은 물론, 이를 지원하는 자금과 인사, 북한 지도부를 겨냥한 사치품 수출입까지 저지하도록 했다.

안보리 결의에 따라 출범한 대북 제재위원회는 약 2주만인 1일 핵공급그룹(NSG)과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생화학무기 수출통제체제인 호주그룹(AG)이 정한 제재대상을 원용한 제재대상 품목을 결정했고 상황호전에 따른 제재완화와 자산동결 대상 및 여행제한 대상자 선정 등은 추후 계속 논의하기로 했다.

안보리 결의가 통과되자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급거 한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순방에 나서 대북 제재 이행을 압박하고 나섰다. 라이스 장관은 한국과 일본에 미국의 안보공약을 거듭 강조하는 한편 안보리 결의에 따라 북한 선박을 검색하는 등 대북제재를 철저히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특히 한국과 중국에 북한을 겨냥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에는 북한의 자금줄로 인식되고 있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사업을 중단하라고 압박했다.

그러는 사이 조지 부시 대통령은 북한이 핵무기를 외부로 이전시킬 경우 분명한 대가를 치를 것임을 경고, 미국이 북한의 핵확산을 새로운 ‘레드 라인’으로 설정했음을 밝혔다.

미국이 이처럼 일사천리로 대북 압박망을 드리우고, 중국과 한국 등 대북 제재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면서도 소극적이었던 나라들을 앞세워 제재 수위를 끌어올림에 따라 북한의 핵실험이 오히려 미국 내 대북 강경파들에게 호재가 됐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그러나 미사일과 핵실험을 잇따라 강행하며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자 부시 행정부는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북핵 정책 실패론도 고조됐다.

중간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부시 행정부가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 같은 강경한 말만 앞세웠을 뿐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까지 한게 무엇이 있느냐는 비판이 강력히 제기됐다.

라이스 장관이 한중일 순방에 나선 동안에도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할 것이란 관측이 나돌아 국제적 긴장은 가라앉지 않았다.

미국 언론이 추가 핵실험 움직임과 가능성을 잇따라 보도하는 가운데 탕자쉬안(唐家璇) 중국 국무위원 일행의 북한 방문이 이뤄지고, 중국측이 북한의 메시지를 미국에 전함으로써 북미간에 간접 대화를 통한 협상 국면이 조심스레 펼쳐졌다.

핵실험 이후 안보리 제재결의와 PSI 등을 앞세워 물샐틈없는 대북 압박을 추진하는 동안에도 미국은 북한에 6자회담을 통한 협상의 문이 열려있다는 메시지를 잊지 않았다.

실제로 미국은 중국과 한국을 엮어 대북 제재와 압박의 드라이브를 강화하는 한편으로 중국을 앞세운 ‘백 채널’을 통해 북한과 협상을 모색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물밑 노력들은 결국 중국의 결정적인 도움으로 6자회담 재개 발표로 이어졌고, 미사일과 핵실험이 잇따른 풍파 끝에 미국은 다시 1년여만에 6자회담의 형식으로 북한과 마주앉게 됐다.

미국은 엄청난 곡절 끝에 다시 열리게된 6자회담이 과거와는 다른 환경에서 열린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북한에는 안보리 제재결의가 가해지고 있고, 제재는 6자회담과 관계없이 지속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니컬러스 번스, 로버트 조지프 두 국무차관을 나란히 한중일에 보내 제재와 협상전략을 동시에 논의토록 했다.

이는 안보리 제재결의란 무기를 배경으로 북한이 모처럼 열리는 6자회담을 전술적으로 악용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단단히 전략을 짜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하지 않겠다’ ‘구체적인 성과’가 있어야 한다는 라이스 장관 등의 발언은 새로 열리는 6자회담이 과거와는 다를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북한이 6자회담을 조여오는 국제사회의 압박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5자간의 공조를 통해 북한이 핵포기에 응하지 않을 수 없도록 유도하겠다는게 미국의 구상이다.

그러나 다시 열릴 6자회담에서 미국이 바라는 성과가 도출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이는 물론 북한이 어떤 자세로 회담에 나올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북한과의 대화는 시간낭비일 뿐이며, 압박을 통한 ‘체제변화’만이 유일한 북핵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믿는 강경론자들이 여전히 부시 행정부를 지배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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