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입국 허용된 탈북자 면면

북한을 떠나 한국을 거치지 않고 제3국에서 곧바로 미국땅을 밟아 ‘아메리칸드림’을 이룬 탈북자는 모두 6명.

남자 2명과 여자 4명인 이들은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서 2~6년 동안 머물면서 인신매매와 강제임신 등을 경험했고 2명은 오누이 사이로 밝혀졌다.

탈북지원단체인 ‘두리하나선교회’가 7일 공개한 이들의 편지에는 탈북자들이 대부분 배고픔을 못 이겨 국경선을 넘었고 체포와 강제북송을 되풀이한 것으로 확인됐다.

함경북도 청진 출신 나오미(34.여.가명)씨는 고교졸업 후 회령 구두공장에서 재봉공으로 근무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식량난이 극심해지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담배장사를 하다 1998년 탈북했다.

하지만 중국에서 인신매매되는 수모를 겪었고 우여곡절 끝에 2001년 중국인과 결혼했다. 그러나 임신 8개월 때 중국 공안에 체포됐으나 가까스로 풀려났다. 나씨는 북한으로 끌려간 뒤 2002년 12월 재탈북에 성공했다.

청진 출신 신요한(20)씨는 수재들만 다니는 제1고등중학교에 재학 중 1999년 기숙사를 빠져나와 이른바 ‘꽃제비’로 전락했다. 이 과정에서 탈북경험이 있는 친구를 만나 국경선을 넘었다. 하지만 3일만에 중국 공안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함경북도 회령이 고향인 신찬미(20.여)씨는 2001년 7월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출했다. 하지만 2002년 10월 중국 공안에 체포돼 강제북송됐으나 2달 만에 재탈북에 성공했다. 이후 중국 남성에게 성폭행당하고 중국화폐 5천 위안에 팔려 다른 남성과 강제로 결혼했다. 2004년 2월 또다시 공안에 붙잡혀 북송됐으나 금년 1월 중국으로 다시 탈북했다.

찬미씨 오빠인 요셉(32)씨는 인민군 3군단에서 근무하다 질병으로 인해 제대했다. 탄광에 취직한 요셉씨는 1997년 두만강을 건너 중국의 친척집을 방문하고 돌아왔으나 한국노래 테이프를 소지한 혐의로 노동단련대에 수용됐다. 1998년 5월 탈북에 성공했으나 2000년 1월 체포된 후 북송돼 그해 5월 재탈북에 성공했다. 그러나
또다시 체포돼 강제북송된 뒤 갖은 고초를 겪다 2004년 3월 기적적으로 재탈북에 성공했다.

데보라(25.여)씨는 청진에서 회사 교환수로 근무했다. 2004년 4월 중국으로 건너가 한족 남자에게 속아 감금상태에서 지내기도 했다.

한나(36.여)씨는 소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장사를 하자는 학부모의 꾀임에 넘어가 중국으로 탈출했다. 이후 인신매매단에 걸려들어 갖은 수모를 당했다.

천기원 두리하나선교회 목사는 3월말 미국을 방문했다 미국측으로부터 “탈북자들의 난민신청을 추진해보자”는 제의를 받았다고 7일 밝혔다.

그는 중국 선양(瀋陽) 등지에 머물던 탈북자 6명을 4월3일 중국 남부지역으로 이동시켰다. 이들은 같은 달 13일 동남아로 이동한 뒤 17일 현지 미국대사관 문을 두드렸다. 미 국무부는 4일 만에 전격적으로 망명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미 대사관이 마련해 준 장소에 대기하다 5일 밤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