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일 북핵 의혹제기..UEP 담판 주목

핵 프로그램 신고를 둘러싼 북.미 간 신경전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 고위 인사가 차례로 구체적이고 핵심적인 내용을 적시하며 대북 압박 수준을 강화하고 나서 추이에 관심이 쏠린다.

특히 오는 16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생일과 한국의 새 정부 출범(25일) 이후에도 북한이 기존의 소극적 입장을 고수할 경우 미국 내에서도 강경파들의 입지가 강화되면서 전체 협상 구도가 흔들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이 제기한 의혹의 핵심 =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6일(현지시간) 미 상원 외교위 청문회 증언을 통해 북한측이 우라늄 농축 핵프로그램(UEP) 의혹을 해명하기 위해 관련 알루미늄 튜브를 제시하면서 핵 프로그램 이외의 용도로 사용했다고 설명했지만 이 같은 설명을 믿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힐 차관보는 또 시리아와 북한 간의 핵커넥션 의혹과 관련해 “우리는 그들의 과거 활동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고 분명히 함으로써 북한이 현재와 미래 뿐 아니라 과거 핵활동에 대해서도 해명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앞서 마이클 매코넬 미 국가정보국장(DNI)은 5일 상원 정보위에 출석, “미 정보기관들은 북한이 과거에 우라늄농축 핵프로그램을 추진했다는 점을 계속 평가해왔으며 오늘날까지 그런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는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북한은 이미 몇몇 중동국가와 이란에 탄도 미사일을 팔았으며 우리는 북한이 핵무기를 해외로 확산시켰을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발언은 미국 정부가 북한이 이른바 UEP 활동을 계속해오고 있으며 특히 재래식 용도가 아닌 핵 프로그램을 위해 우라늄 농축이 시도되고 있고 핵 무기의 해외 확산도 진행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북한이 무기급 우라늄 농축에 성공했는 지 여부와 별개로 북한이 UEP 활동을 해오고 있다는 미국의 믿음은 사실 제2차 핵위기 발단의 근원이었다.

북한은 지난해 말부터 미국이 의심하는 알루미늄 튜브가 실제로는 미사일 등 재래식 무기 시스템에 활용됐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또 성 김 국무부 한국과장이 이끄는 불능화 실사팀에 관련 알루미늄 튜브를 전달해 미국이 분석작업까지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농축 우라늄 흔적이 발견돼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이 러시아측으로부터 수입한 것으로 알려진 150t 가량의 알루미늄 튜브는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로 활용할 수 있는 장비다.

여기에 파키스탄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의 자서전 등에 따르면 파키스탄 핵개발의 아버지로 평가되는 압둘 카디르 칸 박사 등이 북한에 원심분리기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미국내 일부 강경파는 우라늄 농축을 위한 제반 시설을 갖추고 있는 북한이 플루토늄이 아닌 우라늄 농축 방식을 통해 핵 무기 개발을 시도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북한이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영변 핵시설 불능화에 합의한 것도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과거 1990년대 중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우 자진해서 핵 프로그램을 신고하고 관련 시설을 폐기하는 과정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선진국이 놀란 일이 있었다.

당시 남아공이 신고한 우라늄 농축 공장의 경우 정보 당국이 전혀 의심하지 않은 한적한 곳의 작은 공장이라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플루토늄과 달리 우라늄 방식은 방사능 오염이 거의 없어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서도 공정을 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힐 차관보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등 협상파들은 현재의 협상을 계속 유지해나가기 위해서라도 UEP 의혹을 분명히 해명해야 할 상황이다.

외교소식통은 9일 “북한을 향해 미국의 의혹을 진솔하게 설명하면서 ‘완전하면서 충분한 핵 신고서’를 제출해달라고 촉구하는 미 협상파들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면서 “북한이 계속 소극적인 자세로 나올 경우 미국내 여론이 급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북한의 선택 = 미국이 이처럼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북한은 여전히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설 연휴 기간 북한이 보인 반응으로는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의 8일자 ‘강경일변도는 백해무익하다’ 제하의 개인필명 논평을 들 수 있다.

논평은 “미 강경보수세력들이 대화와 협상을 반대하며 강경일변도 정책으로 나온다면 지금까지 대화를 통해 이룩된 모든 것이 순간에 하늘로 날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내 강경파들을 정확하게 겨냥한 셈이다. 역으로 아직은 북한의 협상의지가 여전하다는 점을 확인함으로써 미국내 협상파들에게 힘을 실어주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협상파들은 협상 교착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북한을 설득하거나 현안에 대한 협의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부터 핵시설 불능화와 핵 프로그램 신고 등 비핵화 2단계 조치를 실무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성 김 국무부 한국과장은 지난달 31일부터 사흘간 평양을 찾아 북측과 긴밀한 협의를 가졌다.

힐 차관보는 그의 방북에 대해 ‘건설적 협의’가 있었다고 했다. 물론 기대하고 있는 북한의 ‘핵신고’가 언제 이뤄질지는 모르겠다는 답변에 부연된 말이지만 북한 측이 성 김 과장과의 협의에서 상당한 성의를 갖고 임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외교가에서는 성 김 과장의 이번 방북 성과를 토대로 북한이 조만간 핵 프로그램 신고와 관련해 ‘진전된 내용’을 전해올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특히 성 김 과장의 방북과 거의 동시에 평양을 찾은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는 등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이 점차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는 것도 북한의 입장변화를 예상케 하는 대목이다.

외교소식통은 “8월 베이징 올림픽을 개최하는 중국으로서는 북핵 문제가 다시 파국으로 치닫게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미국 정부도 북핵 문제에서 성과를 내려하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핵 신고 문제와 관련한 접점찾기가 시도되고 국면이 바뀔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특히 힐 차관보가 지난달 30일 매사추세츠 암허스트대학에서의 강연을 통해 “우리는 북한이 우라늄 농축 능력을 개발했다는 것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믿고 있다”고 말한 것은 UEP 문제와 관련, 북한측이 미국의 의혹을 풀어주는 정도면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시사한 것으로 외교소식통들은 풀이했다.

또 미국내 학계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잇따라 ‘단계적 해결방안’이 나오고 있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미국 평화연구소의 존 박 연구원은 “우선 북한이 정확하게 신고할 수 있는 부분들부터 신고하게 만들고 핵 신고를 연대별로 세분화하면 완전한 핵 핵신고가 이뤄질 때까지 신뢰를 쌓아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미 싱크탱크인 헨리 스팀슨센터의 앨런 룸버그 수석연구원은 “북한이 UEP가 없다는 입장에서 이 문제를 핵 신고서에 포함시키지 않고 따로 언급하고 싶어할 수 있다”며 “모든 핵 프로그램을 단 하나의 핵 신고서에 포함시킬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미 의회조사국(CRS)은 북한이 영변 핵시설 불능화 작업을 마치면 미국이 북한에 적용하고 있는 `테러지원국 명단’이나 `적성국 교역금지법’ 중 하나를 해제해 주고 나머지 하나는 `완전하고 정확한’ 핵 신고를 마친 뒤 해 주는 방안을 제시했다.

미묘한 문제를 잠시 우회하는 방식으로 현재의 교착국면을 피해갈 계기를 찾아보자는 이런 방안을 통해 협상을 재개하는 상황도 상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설 연휴가 끝나고 김정일 위원장의 생일(2월16일)을 전후해서 상황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오는 26일 평양에서는 뉴욕 필 오케스트라의 현지 공연이 예정돼있어 북.미 관계에 해빙무드가 극적으로 조성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 라이스 장관의 방북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고 북.미가 지난해 초 베를린에서 극적으로 방코델타아시아(BDA) 해법을 모색한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질 것으로 내다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읽힌다.

하지만 북한 측이 전술적으로 ‘시간끌기’를 하고 다른 6자 참가국들이 섣부르게 양보안을 제시할 경우 협상의 주도권이 북한에 넘어갈 수 있다는 경계감도 함께 나오고 있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