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실망감속 BDA 해법 모색

미국은 13개월만에 재개된 제5차 6자회담 2단계 회의가 22일 큰 성과없이 끝나자 “당초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며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회담 이전부터 북한이 마카오의 BDA(방코델타아시아) 동결계좌 등 금융제재 문제를 핵심이슈로 제기할 것으로 예상, “이번만큼은 회담을 위한 회담이 돼선 안된다”고 거듭 경고해 왔으나 핵폐기라는 핵심의제에 한발짝의 진전도 이루지 못한데 대해 6자회담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감지된다.

미국은 그러나 북한이 목을 매는 BDA 문제에 대해 ‘법대로’ 원칙을 고수하고 있지만, 6자회담 자체를 포기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아 내달 뉴욕에서 속개될 실무회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낙관도 비관도 않는다” 분위기 = 백악관과 국무부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이번 회담에 앞서 “베이징에서 재개되는 6자회담은 일련의 과정으로 파악해야 하며 한 차례의 회담에 의해 판단할 수는 없다”고 강조한데서 알 수 있듯 미 정부는 이번 회담에서 전격적인 돌파구가 마련될 것으로는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장기적 관점에서 융통성을 갖고 대북 협상에 임할 것임을 시사했다.

아닌게 아니라 미국은 6자회담 당사국들이 확인했듯 이번 회담 과정에서 과거와 달리 “굉장히 탄력적인 자세”를 보여주었다.

앞으로도 ‘북핵 폐기시 에너지 지원 및 체제안전 보장’이라는 기본 원칙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유연한 자세를 취할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다만 핵폐기의 최대 걸림돌인 BDA 문제를 놓고 충돌할 소지가 적지 않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美, BDA 전향적 조치 검토할까 = 이제는 미국이 ‘북한 해외자금 동결’과 ‘유엔 안보리 제재 지속’이라는 강경책을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BDA 자금중 일부 합법자금의 선별해제를 통해 북한에 숨통을 틔워줌으로써 6자회담의 추동력을 확보해 갈 것인지가 최대 관심사다. 현재로선 강온론이 팽팽하다.

특히 미국측 BDA 실무회의 수석대표인 대니얼 글래이저 부차관보가 협상 과정에서 “불법 금융거래 사안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밝힌 대목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앞으로는 북한이 BDA 계좌를 해제해 달라고 무조건 떼만 쓸게 아니라 동결자금이 불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먼저 입증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해야 이 문제의 타결이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 의회조사국의 래리 닉쉬 박사가 이날 자유아시아방송과의 회견에서 “북한이 동결자금 해제를 위해선 입금된 돈을 불법용도에 사용치 않았다는 사실이 먼저 증명돼야 하며 이 문제는 미국이 BDA자금을 푸는데 동의할지 여부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스튜어트 레비 재무부 테러및 금융정보 차관이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북한이 위폐제조 재발 방지 등에 관한 구체적 증거 제시와 재발방지를 확약하지 않을 경우 BDA 자금 해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시사한 것도 이런 기조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라이스 장관이 BDA의 북한 동결자금 해제 문제에 대해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는 신축적 입장을 밝혔고, 글래이저 부차관보도 20일 “이번 협상은 사무적이고 유익했다”고 평가한 만큼 미국이 새해 초 뭔가 BDA 문제에 대한 새로운 입장을 정리하지 않겠냐는 희망섞인 관측도 나온다.

워싱턴 소재 세계은행의 고위관계자는 “부시 행정부가 조만간 BDA 동결계좌의 일부를 풀어 북한측에 그 맛이 얼마나 달콤한지를 깨닫게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6자회담 전도 불투명 = 북한이 핵폐기에 관한 성실한 자세를 보이기 전까진 6자회담의 전도도 불투명해질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가안보회의(NSC) 비확산국장을 지낸 개리 새모어 미외교협회(CFR) 부회장은 20일 유에스에이 투데이와 인터뷰에서 “한국과 중국이 대북 투자를 계속하고 식량과 연료를 제공함으로써 미국의 대북 영향력이 지난 1994년에 비해 현저히 약화됐다”며 6자회담 성공가능성을 낮게 봤다.

앞서 새모어는 “6자회담 참여를 통해 협상하는 척하면서 부시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기를 기다릴 것”이라고 예상한바 있다.

제1기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부 한국과장을 지낸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존스홉킨스대 교수도 같은 인터뷰에서 “북한의 이번 회담 참여는 중국측의 경고를 무시하고 핵실험을 실시, 중국측을 분노케 했던데 대한 진무 차원에서 이뤄진 것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내달 뉴욕 BDA협상 관심 집중 = 이에 따라 내달 미국의 뉴욕에서 속개될 북미 협상 결과에 따라 향후 6자회담의 판도가 좌우될 가능성이 적지 않게 됐다.

그러나 북한이 뉴욕 협상에서도 핵폐기를 위한 선행조치없이 BDA 해제 관철만 고집한다면 미국의 대북 접근 자세가 다시 경직될 것이라는 분석이 대두된다.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이 “6자회담에서 원칙에 계속 집중하면 결국 결과물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나 그렇지 않을 경우 특정한 외교트랙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한 대목이 그 근거다.

하지만 미국이 6자회담 틀 자체를 포기할 가능성은 적다는게 지배적 시각이다. 다만 부시 행정부에서 목소리를 죽여온 강경파가 다시 득세, 새로운 제재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측과 협의는 계속하되 상황에 따라선 추가 제재카드를 들고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워싱턴=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