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사법당국 ‘정치망명 승인’, 더 신중해야 한다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탈북자 서재석 씨에게 미국 로스앤젤레스 이민법원이 정치적 망명(Political Asylum)을 승인했다.

이민법원의 판결내용을 아직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없으나, 일부 언론에 보도된 내용만을 보면 미국 이민법원이 보다 정확한 자료와 사실관계를 종합해 한국국적 탈북자의 망명승인을 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서 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초등학생인 아들이 교사에게 폭행을 당하고 ▲그것을 항의하자 오히려 “탈북해서 얻어먹는 주제에…”라는 폭언을 들었으며 ▲한국정부가 자신이 출국하자마자 주민등록을 말소하고 정착금을 끊은 점 등을 망명신청의 사유로 들었다. 서씨는 “한국 국민인지를 의심케 하는 한국의 탈북자 차별 정책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 씨가 한국에서 느꼈을 서러움과 어려움은 깊이 이해가 되며 그러한 언행을 일삼았던 사람들에게 우리 역시 분노를 느낀다. 물론 판결문이 공개된다면 망명승인 과정이 좀더 명료해지겠지만, 만약 서씨의 발언이 망명사유의 핵심 부분이라면, 이는 미 당국의 판단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에 그러한 이유로 타국에 망명을 신청해야 한다면 지금 한국에서 살아갈 탈북자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물론 남한입국 탈북자의 설움과 곤궁을 모르는 바 아니다. 우리 역시 탈북자가 처한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차별을 당하면서 생계지원의 사각지대에 떨고 있는 빈곤층과 사회적 소수자들이 한국에 많다. 우리는 그들의 설움과 곤궁, 차별이 당연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을 ‘정치망명’의 방식으로 풀어보려는 태도가 온당하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 나라가 싫어서 이민을 가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며, 실제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민을 가고 있다. 이것을 막거나 반대할 이유가 하등 없다. 탈북자도 마찬가지다. 엄연히 대한민국 국민인 만큼 외국에 이민 가는 것은 개인의 자유에 속한다.

그러나 ‘정치 망명’의 경우는 이와 매우 다르다. 개인적 고충과 이민의 욕구를 ‘정치 망명’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곤란하며, 미 사법당국도 더 신중해져야 한다.

국내입국 탈북자 강제北送 가능성 없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에 이민법원은 ‘만약 서 씨가 북한으로 송환될 경우 극심한 인권탄압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망명 승인의 조건으로 감안했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민법원 판사가 과연 남한입국 탈북자의 실정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미국에 망명을 신청했다가 추방되어 돌아온 탈북자를 한국 정부가 북한으로 송환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도대체 이민법원 판사가 왜 그런 판단을 내리게 되었는지 의심스럽다.

물론 서 씨가 북-중 국경지역을 여행하다가 북한으로 납치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이는 국내입국 탈북자뿐 아니라 남한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일본인 등 수많은 외국인들을 납치하기도 했고, 그들은 북한에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 앞으로 누군가 “나는 북한으로 납치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때마다 이민법원은 그들의 망명을 수용할 것인가?

미국 당국이 신변이 불안한 상태에 있는 중국 및 제3국 체류 탈북자들의 미국 망명을 수용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이미 한국 국적을 취득한 탈북자에 대해 ‘북송 우려가 있다’고 망명을 승인한 것은 납득하기 여려운 결정이다.

한국정부의 책임도 크다

이번 미 이민법원의 망명승인 결정을 제쳐두더라도 남한 입국 탈북자 문제가 이렇게 전개된 데에는 남한 정부에게도 책임이 있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 12월 레프코위츠 특사가 ‘북한인권국제회의’ 기간 중 방한했을 때 그를 홀대했던 당사자는 바로 한국 정부였다.

당시 레프코위츠 특사는 통일부 장관, 외교통상부 장관과의 면담을 희망했으나 한국 정부는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레프코위츠 특사는 북한인권단체와 일부 인사들만 만나고 돌아가야 했다. 이는 현 노무현 정부가 얼마나 무능하고 어리석은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만약 정부의 대북인권정책이 정당하다면 왜 당당하게 레프코위츠 특사를 만나지 못하는가 말이다.

한국 정부가 국내외 북한인권단체를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북한 눈치만 보면서 마치 ‘기피대상’인 듯 멀리하고, 통일부 차관이라는 사람이 “피켓들고, 성명서 낭독한다고 인권문제가 해결 될 것 같으면 우리도 100만장의 성명서를 낼 수 있다”고 말할 정도이니 더 이상 할 말이 뭐가 있겠나.

매번 문제가 곪아 터지고 나서야 뒷북 치느라 바쁜 이 정부의 무능함과 ‘건달 같은’ 자만심이 결국 사태의 한 원인이 되었다.

이미 결정된 미 관계당국의 사법적 판단을 뒤엎을 수는 없지만 앞으로 이러한 사례가 재발해서는 안 된다. 이제라도 한미 양측은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소통의 통로를 마련하고 공동보조를 맞추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한국정부가 북한인권문제를 정공법으로 다뤄야 한다. 더이상 김정일 정권의 눈치만 보다가는 머지 않아 국민의 심판이 따를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또 북한인권단체와 개별 운동가들도 국내입국 탈북자들의 정치망명 신청 문제를 개인 감정이나 근시안적인 이해타산을 앞세워 무조건 두둔하거나 덮어두려 할 것이 아니라 원칙에 따라 이성적으로 판단,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미 관계당국도 올바른 탈북자 정책을 수립을 위해 남한의 여러 전문가와 북한인권단체들의 폭넓은 의견을 청취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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