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북핵 불능화에 ‘핵무기’ 빼고 쉽게 가나?

▲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

북핵 폐기를 초기단계 조치 로드맵에서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했던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계좌에 대한 동결해제가 19일 이뤄짐에 따라 제6차 6자회담은 한동안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북한 계좌 중 일부 ‘덜 위험한’ 자금에 대한 부분해제 쪽에 무게가 실리는 듯 했으나, 다수의 예상을 깨고 정치적 해결 쪽으로 선회했다. 따라서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6자회담의 초기 걸림돌은 순식간에 제거됐다.

그동안 북한은 BDA에 묶인 2천500만 달러를 돌려받기 위해 ‘올인’했다. 북한은 미국의 ‘先 금융제재 해결’을 줄곧 요구해왔다. 결국 1년 6개월 동안 끌어온 ‘BDA 힘겨루기’는 북한이 승전가를 부르는 것으로 일단락 됐다.

김 부상은 이날 오전 베이징(北京)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열린 6자회담 전체회의 기조연설을 통해 “BDA가 전면 해제되면 영변 핵활동을 중단할 것”이라고 말해 초기단계 이행조치는 계획대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이번 6자회담은 북한이 4월 14일까지 이행해야 할 초기이행조치 다음 단계인 2단계 ‘불능화’ 조치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을 설정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6자회담 참가국들은 불능화 단계에서 핵시설 불능화와 핵프로그램 신고 절차를 병행 추진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신고 다음에 불능화 조치를 취한다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폐쇄와 봉인이 이뤄지고 나면 곧바로 불능화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는 신고절차는 신고대로 하고 불능화는 이와 병행해서 추진하면 핵폐기 절차를 보다 신속하게 끌고 갈 수 있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북측은 ‘불능화-신고 병행추진’ 방안에 대해 아직 구체적 입장을 표명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6자회담에서는 초기조치 이행시한 안에 이뤄져야 할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관련 진상규명을 포함한 핵프로그램 목록 협의를 언제, 어떤 채널에서 진행할 것인지를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초기단계 이후에 이행될 ‘불능화’와 ‘신고’ 조치, 그리고 그에 따른 상응조치인 중유 95만t 상당의 대북 지원을 어떤 형태로 연결할지도 이날 회의에서 논의됐다.

이와 함께 북핵폐기 2단계인 불능화 조치 단계에서는 최대 쟁점은 북한의 HEU 프로그램의 실체를 규명하는 작업과 ‘모든 핵프로그램’에 대한 성실한 신고가 어떻게 이뤄지냐에 따라 달려있다.

김 부상은 북미 관계정상화를 위한 뉴욕회담에서 HEU 존재를 시인하지는 않았지만 이와 관련된 의혹들을 해명할 용의가 있음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2002년 제2차 북핵위기의 원인이 됐던 HEU 프로그램과 관련해 미국이 증거를 제시하면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북한의 자진 신고보다는 미국이 얼마나 정확한 정보와 증거를 확보하고 있느냐에 따라 HEU 문제는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미국이 HEU 프로그램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 BDA 해결 방식과 비슷한 정치적 타결을 볼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즉, 북한이 가지고 있는 것은 핵무기를 만들기 위한 HEU가 아닌 연구용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으로 결론 낼 수도 있다는 것.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도 최근 “북한에 HEU가 있다는 얘기는 들은 바 없으니, UEP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고 지적한 뒤 “종이 위에 농축우라늄 생산 구상을 적어도 프로그램이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북측이 ‘모든 핵프로그램’을 신고할 때 미국과 IAEA가 가지고 있는 정보와 얼마나 일치하느냐도 매우 중요하다.

1993~94년 제1차 북핵위기의 촉발 요인이 북한이 신고한 플루토늄 양과 IAEA가 사찰을 통해 추정한 양 사이의 ‘불일치’에서 비롯된 점을 감안하면 북한이 신고할 ‘리스트’에 따라 6자회담의 향배가 결려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김 부상은 지난 1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의 핵전문가 그룹을 만난 자리에서 “기왕에 생산한 무기급 플루토늄은 2·13합의 대상과는 무관하다”고 거듭 밝혔다. 이는 기존에 추출한 플루토늄(50kg 상당)과 핵무기(7~10개 추정)는 여전히 포기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 6자회담에 참석 중인 한 정부당국자는 “북한의 핵무기는 ‘불능화’의 대상이 아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불능화 조치 단계에서 이미 만들어진 핵무기는 제외한 핵 시설과 프로그램 목록만을 가지고 불능화를 논하겠다는 것이다. 북한과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하는 발언이다.

이같은 주장은 2.13 합의 당시부터 ‘핵무기’라는 용어가 빠지면서 논란이 일기 시작해 점점 그 우려가 현실화되어 가는 상황이다. 2.13 합의가 북한 핵폐기를 위한 초기단계의 조치라는 이유를 들어 기존 핵무기를 제외시키고 간다면 불능화 단계는 탄력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한반도 비핵화는 요원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핵무기는 ‘미북간 군축문제’라는 북한의 주장에 끝내 말려들 수 있다.

따라서 불능화 조치 단계는 미국이나 북한에게 있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완전 핵폐기’에 대한 ‘진정성’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