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북핵 검증전 對北제재 해제…신고서도 공개”

미국이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에 대한 검증이 끝나기 전이라도 이에 대한 상응조치를 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 주목된다. 또 핵 신고 사항 중 플루토늄 문제와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시리아 핵확산 의혹을 분리 대응할 뜻도 내비쳤다.

미국이 이처럼 북한에 긍정적 신호를 보내는 것은 북한의 신속한 핵 신고를 이끌어 내 장기간 교착상태에 빠진 6자회담의 모멘텀을 유지하고, 임기 내 북핵 문제에 대한 성과를 내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데니스 와일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은 17일 한미정상회담 사전브리핑에서 “북한의 핵확산 활동은 플루토늄 핵프로그램 활동과는 다른 문제로 다른 방식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그 동안 북한 핵문제와 관련, 플루토늄 산출량, UEP, 시리아 핵 이전 의혹 등에 대해 ‘모든 핵 프로그램의 완전하고 정확한 신고’를 요구했다는 점에서 상당 정도 유연성을 보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 동안 북한이 UEP와 핵 확산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 핵 프로그램 신고 시한을 넘기면서 6자회담은 100여 일 진전 없이 공전됐다. 이후 ‘싱가포르 회담’을 통해 미국은 플루토늄 문제는 공개신고, UEP∙핵확산 의혹에 대해서는 북한이 간접시인(acknowledge)하는 비밀신고 방식을 제안, 북한과 절충에 들어갔고 상당부분 접점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와일더 보좌관이 핵확산 의혹에 대해 “부수적인 협상”이라고 언급한 것은 북한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미국이 플루토늄 문제에 치중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대목이다.

또 북한 핵문제에 있어서 UEP∙핵확산 의혹 보다는 플루토늄 핵 프로그램이 실질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이 문제 해결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검증 모니터링’을 위해 6자회담 비핵화 그룹과는 별도의 소그룹을 만들겠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김태우 국방연구원 군비통제실장은 ‘데일리엔케이’와의 통화에서 “플루토늄 검증은 북한이 그 동안 감췄던 핵무기의 비밀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라며 “미국은 영원한 미궁이 될 수 있었던 실체인 ‘핵무기’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라고 진단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의 시리아 핵 이전 의혹은 실체 파악이 불분명하고, UEP 또한 과거 북한이 원심분리기 등을 수입하긴 했지만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게 미 국무부의 판단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반면, 미국이 UEP와 시리아 핵 협력설 등을 ‘뒤로 미루겠다’는 뜻을 밝힌 것을 두고 UEP와 핵 확산 의혹 등의 대한 검증은 사실상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2차 북핵사태의 원인이었던 UEP에 대한 신고와 검증이 플루토늄 문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는 기류에 따라 부시 행정부 임기 내 이 문제의 해결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이처럼 북핵 신고문제에 있어서 분리해서 대응키로 한 것은 조시 부시 대통령임기 내 북핵 문제의 진전을 이루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미북이 핵신고 견해차로 계속 대립 결국 6자회담이 장기간 공전하면 외교적 성과 없이 임기를 마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부시 행정부의 북핵 해법을 미국 내 여론과 의회 내 강경파들이 받아들일 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 동안 강경파들은 “진전은 없고 양보만 했다”며 점차 비판 강도를 높이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와일더 보좌관이 “북한의 플루토늄 핵활동 신고에는 영변 핵시설은 물론 광석 농축시설(iron-ore enrichment)부터 핵실험장까지 다른 시설들도 모두 포함될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 같은 미국 내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으론 미국 내 강경파와 부시 행정부가 미북간 ‘잠정합의’에 대해 타협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국내 외교소식통은 “미북간 ‘잠정합의’에 반발했던 강경파들이 부시 행정부와 타협한 것으로 보인다”며 “강경파들이 북핵 진전 기류에 밀린 것 같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미국은 북한의 핵 신고에 따른 검증이 완료되기 전에라도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등의 ‘상응조치’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17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실질적으로 의무를 이행한다면 미국은 대북제재 가운데 일부를 해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측 수석대표인 김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이날 “북한의 핵 신고와 미국측의 대응조치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것이며 어느 것이 먼저 될지는 모르지만 시차를 거의 두지 않고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 미국과 북한의 ‘싱가포르 회담’ 결과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이 나오지 않고 있고, 핵 신고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추가협상이 진행되는 것으로 볼 때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라이스 장관이 “6자회담에서 진전이 있었지만 아직 조심스럽고 의심스러운 부분이 남아 있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북한이 플루토늄 산출량에 대한 성실한 신고와 투명한 검증을 보장할지도 미지수다.

이에 따라 결국 내주 방북하는 미국측 전문가들과 북한의 추가 핵신고 협상이 북핵 신고 문제 돌파구 마련의 중대한 고비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