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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던 미-북간 방코델타아시아(BDA) 관련 2차 실무회의가 합의 없이 31일 종료됐지만, 미국은 북한의 불법행위를 규명하는 데는 일정한 성과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니얼 글레이저 미 재무부 금융범죄담당 부차관보는 이날 실무회의 직후 “북한의 돈세탁에 관한 조사가 북측과의 협의 후 해결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북측에 50개 계좌 보유자에 대한 정보를 건넸다”면서 “회의 과정에서 이 계좌들이 돈세탁에 활용됐다는 우리의 우려가 정당하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미국측의 주장은 실무회의 과정에서 BDA 돈세탁과 관련한 활발한 논의가 진행됐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북한이 이에 대해 어떠한 답변을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그동안 북한이 취해온 행동양식을 놓고 봤을 때, 불법행위를 쉽게 인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추측이다.
미국이 제시하는 증거에 대해 해명하고, 미국이 추가로 제시하면 또 다시 반론을 제기하면서 팽팽한 힘겨루기가 반복됐을 것이란 관측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BDA 북한계좌(2400만 달러) 중 합법·비합법 계좌에 대한 구분까지 진척이 됐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북한 입장에서도 최상은 아니지만 차상의 결과는 얻은 것일 수 있다.
글레이저 부차관보는 회의 첫날 “이번 회의에 위조지폐 전문가 두 명을 데리고 왔다”며 “(대북 금융제재를 시작한 이후) 18개월 간 30만 쪽에 달하는 문서를 검토한 결과 북한의 불법 금융행위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할 정도로 북한의 불법행위를 규명하는 데 역점을 뒀다.
BDA 실무회의가 종료됨에 따라 차기 6자회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이 BDA 회의결과에 만족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럴 경우에도 이미 지난 달 16~18일 베를린 미·북 수석대표 회동에서 합의한 사항을 뒤집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외교 소식통들의 전망이다.
하지만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적했듯이 BDA와 6자회담이 별개이지만 서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북측이 이번 실무회의 결과를 평가한 이후 차기 6자회담에서 하나의 협상 의제로 제시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6자회담에 정통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 “북한이 자국 핵프로그램의 종료 조건을 놓고 협상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주기 시작했다”면서 “내주 베이징에서 회담이 재개되면 일부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한반도와 중국 등 아시아 문제를 총괄할 것으로 알려진 존 네그로폰테 미국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는 30일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북핵 문제 해결의) 주된 목표는 한반도의 비핵화이며, 6자회담 당사국들과 이를 추구하고 있다”며 “어려운 문제이고, 그릇된 희망을 주고 싶지는 않지만 일부 낙관론의 근거가 있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BDA 문제를 협상의 지렛대로 보는 시각도 드러냈다. 그는 “제재가 협상을 망친다는 사람도 있고, 협상의 지렛대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후자의 얘기가 더 그럴듯한 얘기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이 그동안 BDA와 6자회담을 분리, 투 트랙(two track)으로 가져간다는 것과 달리,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신축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미 국무부는 BDA 문제가 ‘장기적 의제’임을 분명히 했다. 톰 케이시 국무부 대변인은 30일(현지 시각) 기자 간담회에서 BDA 북한계좌 중 1300만 달러에 대한 동결해제가 추진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런 계획이 진행 중이라는 걸 알지 못한다”면서 “BDA 문제는 많은 추가 작업을 필요로 하는 장기적인 의제”라고 말해 BDA 문제 해결이 쉽지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