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북미 양자대화에 신축성 보이나

미국이 최근 대북 금융제재를 협의키 위한 북미 양자대화에 대해 종전보다 유연해진 듯한 입장을 보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대북 압박 기조로 나가던 미국이 북미 직접대화를 통한 6자회담 복원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만큼 북한의 호응을 이끌어낼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 내에서는 이런 입장이 ‘6자회담 틀 안에서만 북미 양자대화가 가능하며, 금융제재는 법집행 차원일 뿐’이라는 기존 미국의 입장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기면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보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한미 양국이 이른바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구체화 화는 협의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미국측으로부터 미묘한 변화 가능성이 감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북한의 6자회담 복귀선언으로까지 이어질지 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 힐 차관보 발언에 변화 있나 =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22일 뉴욕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미국은 일단 북한이 6자회담에 들어올 의사가 있음을 확인하면 대북 금융제재 문제를 북한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힐 차관보는 또 같은 날 국내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북한이 6자회담 복귀의사를 밝히면 북한과 대북 금융제재의 정상화를 논의하겠다”며 “금융제재의 정상화는 제재의 종결을 말한다”고 말했다.

앞서 힐 차관보는 올 4월 도쿄(東京)에서 열린 동북아시아협력대화(NEACD)에서 금융제재 관련 협의를 위한 북미 양자대화를 원하는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의 양자대화를 한사코 피했다.

그는 당시 “6자회담을 보이콧하는 사람과는 대화할 수 없다”면서 북한이 회담 복귀 날짜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보여야 양자대화가 가능하다고 못박았다.

이런 발언 추이에 비춰 미국은 ‘6자회담의 틀’ 안에서 북미 양자대화가 가능하다는 기존 입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 정부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다만 한미 간에 6자회담 재개를 위한 ‘포괄적 접근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 기존 입장을 보다 적극적이며 긍정적으로 설명하는 것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과 양자대화가 가능한 ‘6자회담의 틀’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와 관련해서는 미국이 이전에 비해 상당히 유연해졌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북한이 6자회담에 돌아와야 양자대화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강경하던 때의 미국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북한의 명확한 회담복귀 의사만 확인되면 회담 전이라도 양자대화를 가질 수 있다는 선까지 발전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회담 복귀 날짜에 대한 입장을 가져오면”(4월 NEACD에서)과 “복귀의사를 확인하면”(9월22일)의 차이는 수사의 차원일 뿐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북한의 태도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일종의 양보로 보는 시각도 있다.

◇ 미국이 유연성 강조하는 배경은 = 미국측이 적어도 뉘앙스 측면에서 대북 유연성을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지난 14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6자회담 재개와 9.19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한 포괄적 접근방안을 추진키로 합의한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북핵 해결을 위해 압박과 대화의 두 카드를 동시에 쓰고 있는 미국이 대북 안보리 결의 이행의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긴 하지만 포괄적 접근방안을 통한 북한과의 대화 노력에 일시적으로나마 무게를 실어주고 있는 듯한 양상인 것이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가 21일 연합뉴스와의 회견에서 “미국은 추가적인 대북 제재를 할 필요가 있는 지에 대해 굉장히 심사숙고하고 있고, 결정을 서두를 의향이 전혀 없다”고 밝힌 것도 양자대화의 분위기 조성을 감안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또 한미 정상간 합의에 따라 현재 북한을 회담에 복귀시키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는 만큼 북한이 6자회담 복귀의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는 금융제재 문제를 어떻게든 극복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음을 북한에 전하려 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가 법 집행의 성격을 갖고 있는 만큼 6자회담과 무관하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6자회담 재개를 위해 극복되어야 할 사안으로 보고 있다는 것은 미국이 이번 포괄적 접근방안에 BDA 문제까지 포함시키려 한 데서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또 7월 15일 유엔 안보리의 대북 결의 채택 후 반발하는 모습만 보이던 북한이 8월 26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9.19 공동성명이 이행되면 우리가 얻을 것이 더 많으므로 6자회담을 더 하고 싶다”고 밝혀 미국내 협상파의 입지를 조금이나마 살려 준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9.19 공동성명 채택 1년이 지나도록 회담 공전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을 그냥 내버려 둬선 안된다는 인식,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북한이 핵실험 카드를 쓸 경우 대북정책 실패론이 제기돼 선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 미 유연성이 포괄적 접근방안에 영햘 줄까 = 관심은 우선 미국의 유연성이 현재 한미간에 협의 중인 ‘포괄적 접근방안’에 어떻게 반영될지에 모아진다.

포괄적 접근 방안이 북한의 회담복귀를 이끌어 내려면 북미간에 BDA문제를 협의할 수 있다는 추상적 수준을 넘어 북한에게 어떻게 하면 BDA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를 제시하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따라서 BDA 문제의 구체적 해법이 현재 진행중인 한미 양자대화와 이르면 다음 주 진행될 한·미·일 3자 협의를 통해 ‘포괄적 접근 방안’에 어떻게 녹아 들어갈지 주목된다.

또 북한의 호응여부도 관건이다.

미측의 유연성을 북한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포괄적 접근방안’을 수용하게 될지, 아니면 ‘선 금융제재 해제’라는 교조적 입장을 벗어나지 못할지 현재로선 단언키 어려운 상황이다.

BDA 해법이 담긴 포괄적 접근방안에 대해 북이 긍정적 입장을 보일 경우 다음 달 또는 늦어도 11월 중순 베트남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전에 북미 양자대화가 성사될 수 있다는 것이 우리를 포함한 관련국들의 기대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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