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복잡한 속내와 계산

10월 남북정상회담을 보는 미국의 시각은 미묘하고도 복잡하다.

절제되지 않은 언행 하나가 자칫 코앞으로 다가온 한국의 대통령선거에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는데다 이번 회담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의 대북 외교정책에 배치되는 내용이 나올 수도 있다고 보는 탓이다.

북한의 비핵화가 이뤄지기 전에 평화체제 문제와 관련해 지나치게 속도를 내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 미국의 기본 입장이다.

이런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미국은 이번 정상회담에 대해 공식적으론 환영의 뜻을 표하면서도 내부적으론 경계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김정일(金正日) 위원장에게 선뜻 대규모 대북 지원을 약속하거나 평화체제 문제와 관련한 일방적 선언을 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그 원인이다.

워싱턴 외교소식통들이 “북핵 해결이 최우선 관심사인 미 입장에서 이번 회담이 약(藥)이 될 수도 있고, 독(毒)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특히 부시 대통령이 내달 15,16일께 한나라당 이명박(李明博) 대통령 후보를 만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남북정상회담을 의식, ‘원려'(遠慮)가 작용했다는 관측도 없지 않아 주목된다.

◇ 미, 엇갈린 기류와 복잡한 계산 = 미국 정부와 여론주도층 내에 상충되는 두가지 기류가 강하게 흐르고 있다.

이들 기류의 중심에는 역시 부시 대통령이 정좌해 있다. 부시는 끊임없이 다른 두 기류의 발언을 하고 있다.

북핵문제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할 조급한 입장인 것은 분명하나, 한국이 미국과 긴밀한 조율없이 민감한 이슈를 치고나갈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때문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과 “한국전 종전을 선언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이달초 시드니 정상회담에선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하면 평화협정을 김 위원장과 공동 서명할 수 있다”며 진일보한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부시는 최근엔 북한과 시리아간 핵거래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북한을 ‘야만 정권’으로 규정하고 무기확산을 경고한 것은 남북정상회담에서 ‘과속’을 방지하기 위한 의도된 발언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돈다. 북한과 시리아간 핵거래설 제기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한반도 전문가들은 “부시 대통령의 잇단 경고 발언은 북한을 겨냥한 것이지만 다분히 노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겨냥한 것일 수도 있다”면서 “한마디로 김 위원장의 완전한 북핵폐기 선언이 없는 마당에 노 대통령이 과속해선 안된다는 메시지가 담긴 것”이라고 풀이했다.

◇ 한반도 전문가들 상반된 전망 =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연구원은 연합뉴스와 이메일을 통해 “이번 회담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축소하고 지역안정을 강화하는 국제사회 목표를 충족하는데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낙관론을 폈다.

다만 “김정일 정권은 한국 대선에 영향을 줌으로써 친북 정권이 들어설 수 있도록 돕고 싶겠지만 한국인들이 이미 그 내용을 대부분 알고 있어 그들이 원하는 대로는 잘 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회과학원(SSRC)의 한반도전문가 레온 시갈은 “워싱턴에선 ‘한국이 미국보다 더 앞서 나가선 안된다’고 하지만 이번 회담은 정말 중요한 기회임에 틀림없다”면서 “김 위원장이 한반도 평화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번 기회에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콧 스나이더 아시아재단 선임연구원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핵폐기와 관련해 북한이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경우 남한 국민들도 이제는 북한과의 말 뿐인 평화선언, 남북경협 강화 등에 대해 별로 감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스나이더는 다만 “김 위원장이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공개적으로 핵폐기 의지를 강하게 천명한다면 성공적 회담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부시, 이 후보 면담 정상회담 견제용일까 = 일각에선 부시 대통령이 사상 처음으로 한국의 야당 대선후보를 면담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은 단순히 자기와 색깔이 비슷한 한국의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를 만나는 차원에 머무는게 아니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지난번 한국 대선때 ‘미국 변수’가 결정적 판도 변화를 가져온 점을 감안, 극도로 몸을 사려온 부시 행정부가 더욱이 한미정상회담 추진이 최근 불발된 마당에 야당 후보를 만나는 것은 여러 함의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가까이는 한국내 여론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고, 외교안보 정책면에서 자신과 궤를 같이하는 이 후보를 만나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가 담겨 있을 수 있겠지만, 멀리는 남북정상회담에서 북측에 잘못된 신호를 주는 합의내용이 나올 경우를 대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때문에 미측이 희망하는 북핵 폐기 문제에 대한 언급보다는 평화선언 등에 초점이 맞춰지는 결과가 나올 경우 북한 핵문제에 대해 두 사람이 공동 원칙을 표명, 이를 바로잡겠다는 계산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있다.

어찌됐건 이번 정상회담은 한국 대선판도와 전반적인 정치지형, 나아가 한미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국내외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