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랜드연구소 ‘北 보고서’ 현실성 있나









미국 <랜드연구소> 찰스 울프(Charles Wolf) 수석연구원과 카밀 아크라모프(Kamil Akramov) 연구원은 최근 ‘북한의 역설(North Korean Paradoxes)’이라는 제목으로 94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펴냈다. 이 보고서의 내용 일부가 6일 언론에 소개됐다.

‘한반도 통일의 상황, 비용, 결과(Circumstances, Costs, and Consequences of Korean Unification)’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이 보고서는 한반도 통일의 가능성을 분석한 뒤 통일비용을 산출하고, 한반도 통일이 미칠 영향 등을 분석하고 있다.

<랜드연구소>의 이번 보고서는 1999년에 발표한 보고서의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다.
1999년 8월 <랜드연구소>는 ‘한국 통일을 위한 대비 – 예측되는 시나리오와 그 의미(Preparing for Korean Unification – Scenarios & Implications)’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올해 발표한 보고서는 미국 국방장관실(OSD)의 의뢰로 국방, 외교, 경제 분야에 정통한 연구원 2명이 작성하였으며, 1999년의 보고서는 미 육군 첩보담당 참모차장실의 지원을 받아 당시 <랜드연구소> 국제정책분야 선임고문이었던 조나단 폴락(Jonathan D. Pollack)과 이 연구소 자문위원인 연세대 이정민 교수가 공동 작성하였다.

‘muddling through’ 전술을 정확히 알아맞힌 1999년 보고서

1999년의 보고서는 향후 김정일 정권이 크게 3가지의 선택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내다봤다.

▲시장경제 도입을 비롯한 대규모의 경제개혁 단행 ▲경제특구 중심으로 점진적이며 피상적인 변화 ▲경제 ‘조정’ 차원의 변화만 하면서 국제사회의 지원에 의존해 근근이 생존을 유지하는 것.

<랜드연구소>는 이중 세 번 째 시나리오를 ‘muddling through’라고 명명하면서 북한은 이런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김정일 정권 유지에 주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의미 있는 개혁’을 할 수 없으며, 따라서 북한을 대상으로 한 연착륙정책이 성과를 거둘지 의문이라고 했다. 연착륙을 위해 북한을 지원해줘도 북한은 군사력 유지와 강화에 최대한의 자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6년 후 지금의 상황을 보면 이러한 예측은 적중했다.

1999년의 보고서는 북한이 단기적으로는 ‘muddling through’ 전술로 버텨낼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결국 체제가 붕괴되어 흡수통일로 귀결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리고 흡수통일과 관련한 4가지의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통합과 평화적 통일 ▲붕괴와 흡수 ▲분쟁을 통한 통일 ▲불안정과 외부개입 가능성

첫 번째 시나리오는 북한이 개혁개방을 하면서 남한과 점진적인 통합을 이루어 궁극적으로 통일에 이르는 것인데, <랜드연구소>는 그 가능성을 희박하게 내다봤다.

두 번째 이후 시나리오는 대체로 북한의 급격한 변화를 상정하고 있다. 1999년의 보고서는 “북한은 기본적으로 동독보다는 철권통치를 편 차우세스쿠 시절의 루마니아의 유사하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북한도 루마니아처럼 수뇌부가 무너지면 당과 군대가 급속히 붕괴되고 여러 개의 단위로 갈라져, 각각은 자체 관할구역에 대해 정치적 군사적 통제권을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때에 내부적 폭력과 대외적 충돌의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1999년의 보고서는 총 8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마지막 장의 소제목은 ‘미 육군에 의미하는 바’이다. 보고서의 작성 배경이 ‘북한 붕괴’를 여러 각도에서 예측해보면서 그때에 미군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도움을 주기 위한 것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남한이 낮 2시이면 북한은 밤 2시, 급격한 체제통합은 서로 고통

만 6년 만에 제출된 이번 보고서는 3가지 통일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이전 보고서와 마찬가지로 ▲체제진화와 통합을 통한 통일 ▲붕괴와 흡수를 통한 통일 ▲분쟁을 통한 통일 등이다. 이 가운데 첫 번째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역시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주로 두 번째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면서 한반도 통일비용을 추산하다.

그 결과 이번 보고서는 한반도 통일 비용을 500억~6천 700억 달러(2003년 달러화 기준)라고 계산한다. 그리고 통일 후 한국의 국내외적 변화를 예측하고, 통일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제안한다.

이 시기에 미국 국방장관실이 왜 갑자기 이러한 연구를 <랜드연구소>에 의뢰했는지 그 정확한 배경을 알 수 없지만, 이번 보고서는 중요한 맹점을 지니고 있다. 통일비용의 추산방법을 주로 독일의 통일사례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분단국의 통일사례로 참고할 만한 케이스가 독일 통일 밖에는 없었겠지만, 1999년의 보고서에서 ‘북한은 독일보다는 루마니아와 가깝다’고 한 전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번 연구자들은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남한과 북한은 독일과 같은 방식으로 통일하기 어렵다.

통일 이전 동독은 공산당 집권 하에 수많은 인권침해가 있긴 했지만 지금의 북한과 비교해본다면 ‘양호’했다. 동독과 서독의 인권 시차(時差)가 6시간이었다면, 남한과 북한의 그것은 12시간이다. 남한이 ‘오후 2시 대낮’이라면 북한은 ‘밤 2시 칠흑(漆黑) 같은 어둠’이다. 경제나 복지, 교육, 의료, 환경, 치안 모든 것이 그렇다. 이러한 체제가 급격히 통합되면 남한과 북한 서로가 고통일 뿐이다.

북한의 체제를 일순간 남한의 체제에 끌어오게 되면, 단적인 예로 북한을 남한의 사회복지시스템에 꿰어 맞추려다 정부는 파산선언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랜드연구소>의 보고서에서 예측한 500억~6천 700억 달러는 오히려 약과다. 그것으로 단기간 통합은 할 수 있겠지만 ‘유지’는 불가능하다. 북한 주민들의 자립심이 크게 상실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체제는 변해야 한다. 국유제도 바뀌어야 하고 계획경제도 시장경제로 바뀌어야 하고 대외적으로 개방되어야 한다. 민주적인 선거제도도 도입되어야 하고 관료제도도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급격한 체제변화는 남한을 위해서나 북한을 위해서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남북통일이 어쩔 수 없이 북한이 남한에 통합되는 ‘흡수통일’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급격한 체제통합은 무리가 많다.

‘통일비용’ 걱정보다 김정일 체제전환이 먼저

<랜드연구소>의 이번 보고서가 제안한 “남북한을 합친 군 병력을 현재의 170만에서 40만정도로 감축”하고 그것을 통일비용으로 활용하는 것은 검토해볼만한 제안이다. 북한이 완전히 재건되어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남한이 북한의 국방을 완전히 책임져주는 것이 통일 이후 남한이 북한에 해 줄 수 있는 가장 크고 좋은 ‘지원’일 것이다.

여하튼 모든 통일 논의의 기본은 일단 김정일 정권을 제거하고 북한을 민주화하는 것이다. 북한이 민주화되지 않고서는 체제통합이니 정부통합이니 통일비용이니 하는 모든 논쟁이 ‘뜬 구름 잡는 식’으로 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들은 <랜드연구소>의 이번 보고서의 통일비용 추산결과를 “무리한 체제통합은 재앙이며, 따라서 북한을 계속 지원해줘야 한다”는 근거로 삼을지 모른다. 그런 사람들은 <랜드연구소>에서 1999년에도 비슷한 유형의 보고서를 제출했다는 것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 당시 <랜드연구소>는 “북한에 대한 지원은 군사력의 확장만을 불러온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인도적 지원 이상의 북한에 대한 지원은, 북한 주민들에게는 남북한의 무리한 체제통합보다 더 큰 재앙이다. 독재정권의 수명을 늘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통일비용’을 앞세우면서 “통일을 하지 말자”거나 “북한문제에 관심을 끊자”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좋든 싫든 남한은 북한과 인연을 끊고 살 수 없다. 남북의 통일을 체제통합으로만 생각하니까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그러나 통일에 반대하는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북한문제에 관심을 끊자는 것은 대단히 이기적인 발상이다.

통일 이후 남한 국민들은 분명히 많은 통일비용을 지출해야 할 것이며, 그동안 쌓아온 사회복지 혜택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릴 수도 있지만 그것이 우리의 숙명이다.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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