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동북아전략 새로 짜나

북한의 핵실험 이후 미국에 하나의 뚜렷한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그간 북한 문제와 관련해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워온 중국의 역할을 사실상 처음으로 인정, 평가하면서도 러시아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 한다는 점이다.

또한 일본과는 동맹관계를 더욱 강화하면서도 한국에 대해서는 적잖은 불만과 압박을 가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눈에 띈다.

이 때문에 중국과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21세기 최대 우방으로 부상한 일본과는 동맹관계 수위를 더욱 높여가면서 한국과 러시아와는 협력속 긴장을 유지하는 구도로 가져가려는 포석이 아니냐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우선 지난주 일본과 한국, 중국, 러시아를 순방하고 돌아온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물론이고 딕 체니 부통령까지 전면에 나서서 중국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부시 행정부의 대 동북아 정책에 변화가 오는게 아니냐는 관측이 대두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특히 라이스는 지난 20일 중국 지도자들과 연쇄 회담을 가진 뒤 북한 핵실험에 대한 유엔안보리의 제재결의 채택에 중국이 동참한 사실을 거론하면서 “중국의 대북 관점이 변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추켜세웠다.

나아가 “한 번에 다 되지는 않겠지만 중국이 미국에 중요한 동반자가 되려는 징후를 감지했다”고까지 했다.

체니 부통령도 22일 공개된 시사주간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핵실험에 대해 국제사회가 대응하는데 있어서 중국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면서 “북핵문제를 대하는 중국의 관점에 중요한 변화가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북핵문제를 푸는데 중국이 최대 변수”라는 사실을 굳이 감추지 않고 있다.

때문에 중국을 미국과 21세기 패권을 다툴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했던 조지 부시 행정부가 빌 클린턴 전 행정부 시절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복귀하려는게 아니냐는 관측도 워싱턴 포스트 등 언론 일각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미 고위관계자들은 중국이 이처럼 북핵 문제에 성의를 갖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데는 불가피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체로 ▲북한에 대한 영향력 유지를 통한 대미 협상력 확보를 비롯 ▲북한과 러시아의 급속한 관계개선 징후 ▲일본의 핵무장및 군국주의 부활 ▲동북아 핵도미노 현상 ▲북한 체제 붕괴가 중국 경제에 미칠 혼란 등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어떤 경우든 고속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으로 동북아의 세력균형이 깨지는 것은 원치 않으며, ’현상유지’(status quo)가 최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AP 등 미 언론들도 “중국은 적어도 동북아에서 러시아외 제2의 핵무기 보유국이 탄생하는 걸 원치 않고 북한이 미국 우방인 한국과 통일되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특히 북한 핵실험으로 일본, 한국, 대만의 핵무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대북 강경책을 구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어떻든 부시 행정부가 전례없이 중국의 역할을 우호적으로 평가하고 나선 것은 여러 전략적 고려가 작용한 결과라는 데 큰 이론이 없다.

우선 11.7 중간선거를 겨냥한 의도적 발언이라는 해석이다. 안보 문제가 최대 이슈로 부각된 이번 선거를 앞두고 중국의 협조를 부각시켜야 부시의 대북정책 실패론을 잠재울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라이스 장관이 22일 귀국직 후 “북한 문제에서 중국과 더욱 깊은 협상을 끌어내려는 부시 행정부의 정책이 옳았음을 확인시켜 주었다”고 강조한 것도 민주당의 북한정책 실패 주장에 제동을 걸 방패막이로 ’중국 카드’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중국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잇단 ’러브콜’은 본격적인 대북 제재국면에 대비한 사전 정지용이라는 해석도 있다.

유엔 제재결의 1718호에 따라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체제를 본격 가동, 북한 화물에 대한 검색에 나서고 북한의 돈줄을 죄려 할 경우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북핵 문제에 관한 중국의 역할에 실제 이상의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듯한 태도는 중국이 부시 행정부에 협조적이었다기보다는 중국의 협조가 앞으로 절실하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없지 않다.

반면 미국이 한국과 러시아에 대해 다소 거리를 두려는 듯한 모습은 기존 정책의 근본적인 변화라기보다는 북핵실험 이후 대북 추가 제재를 염두에 둔 행보라는게 다수설이다.

중국은 의외로 미국의 강경제재에 손발을 맞추려는 자세를 취하는 반면, 한국은 여전히 소극적이고 조심스런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대북 강경제재 조치를 추진중인 미국으로선 불만스런 대목이라는게 미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라이스 장관이 이번 러시아 방문 때 느닷없이 과거 피살된 러시아 재야 언론인의 집을 방문하는 등 인권문제를 들고 나선 것은 러시아와 북한의 급속한 관계개선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워싱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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