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북 압박강화 기조 불변

이종석(李鍾奭) 통일장관이 지난달 23일 ’미국 실패론’을 말했을 때 ’뜬금없는’ 그 발언의 배경을 찾아보기 보다는 ’부적절 발언’ 논란이 컸다.

그러나 이 장관의 발언 사흘전인 20일 북핵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역시 ’뜬금없이’ 한국내 대북정책 논란을 거론하며 “흥미롭다”고 평가하고 “권장돼야(encouraged)” 할 일이라고 말했었다.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한국내 반대 여론을 사실상 고무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한국내 대북정책 논란을 “북한으로부터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는 포용정책과 대가가 있어야 한다는 더 엄격한 상호주의(more quid pro quos)”간 논란이라는 그의 규정이나, 대북압박이 효과가 없지 않느냐는 취지의 질의에 “북한과 더 가깝게 지내고 인내심을 많이 보이는 접근법도 역시 작동하지 않지” 않느냐는 그의 답변은 이러한 함의를 더욱 분명히 한 것이다.

이종석 장관의 ’미국 실패론’은 힐 차관보의 ’포용정책 실패와 대북정책 논란 권장론’에 대한 답변이었던 셈이다.

어쨌든 힐 차관보는 당시 “압력수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미국의 대북 압박 강화 기조를 분명히 하고 “우리 의견을 한국 정부 당국에 개진할 필요는 있다”고 밝혔다.

힐 차관보의 이 증언 무렵, 미국의 테러와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방지 대책을 국제금융면에서 총괄하는 스튜어트 레비 재무차관이 이미 한국을 방문해 외교부, 재경부 등 관계자들을 만난 데 이어 일본, 싱가포르,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들을 순방하며 유엔 안보리의 대북 결의 이행 방안을 협의하거나 주문하고 있었다.

레비 차관은 아시아 순방 후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을 포함한 유엔 회원국이 “최소한” 취해야 할 조치로, 미국에 의해 WMD 연루 기업으로 지정된 북한 기업 11개에 대한 자산동결과 거래금지를 제시했다.

안보리의 대북 결의 직후 터진 중동사태로 인해, 미 정부 당국자와 언론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는 거의 실종 상태인 것처럼 보이지만,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11일 전 세계적인 ’도둑정치’ 근절 운동을 선언하고 북한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그 주된 대상의 하나임을 밝혔다.

이는 독재정부와 독재자가 ’국민의 돈’을 훔쳐 불법활동이나 WMD에 사용하는 것을 막겠다는 명분을 내세운 것으로, 북한에 안보리 결의라는 커다란 우산을 씌운 데 이어 그 우산살을 하나하나 촘촘하게 박아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조치들은 “문제는 돈이다”라는 인식에서 북한의 검은 자금을 빈틈없이 찾아내 봉쇄한다는 전략에 따른 것이다.

레비 차관은 재무부의 이러한 대북 금융수단들을 “외교로 풀 일과 군사행동을 할 일 사이의 공백(gap)을 메우는” 것이라며 “다른 나라의 행태 변화(behavioral change)를 가져오기 위해 압박수단을 쓸 회색지대가 넓게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대북 금융수단에 착안한 것은 그러나 안보리 결의 이전 지난해 5월, 미 국방부가 북한에 있는 6.25 참전 미군 유해 발굴작업의 중단을 선언할 때부터 분명해졌다. 북한에 인건비 등으로 10년간 지급한 현금 1천500만달러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들어갔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내부에서 제기되기 시작했었다.

부시 행정부는 앞으로도 이러한 국제금융 수단과 확산방지구상(PSI)을 주축으로 한 대북 압박을 계속 강화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 강행 파장 속에 묻혀버리긴 했지만, 힐 차관보가 대북 압박 강화를 밝힌 같은 날 같은 위원회 청문회 2부에 증인으로 출석한 아놀드 캔터 전 국무부 차관과 모튼 아브라모위츠 전 국무부 차관보는 “미국이 방코 델타 아시아(BDA)에 대한 조사와 조치를 신속히 마무리하고, 아직 끝까지 가보지 않은 외교해법의 길을 시도해봐야 한다”고 말하는 등 대북 협상론도 여전히 살아있다.

이들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 압박이나 제재도 한국과 중국 등 다른 국제사회의 협력없이는 효과가 없을 것이라며, 미국이 실제로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자세와 행동을 보여줄 것을 촉구하는 등 대북 협상론자들은 여전히 부시 행정부가 아직 시도해보지 않은 외교해법의 남은 부분을 먼저 소진해볼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지난달 상원 청문회에서 유난히 “솔직히”라는 말을 많이 쓴 힐 차관보는 미 정부내에 대북 협상 반대론이 있다고 인정하면서 “북한이 명분을 얘기하는데, 나에게도 (반대론을 극복할) 명분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북한에 6자회담 복귀를 촉구했다./워싱턴=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