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북정책 변화 주도 힐 차관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임기 말년에 대(對)북한 정책을 `대치’에서 `화해’로 180도 바꾼 데는 지난 3년 간 북한과의 `직접 협상’을 끈질기게 주장해온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고 워싱턴포스트 인터넷 판이 26일 보도했다.

특히 이 같은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로 인한 북한 핵폐기 협상은 부시 행정부 말년 최대의 외교적 성과로 떠오르고 있다고 이 신문은 평가했다.

신문에 따르면, 대중매체를 능란하게 다룰 줄 아는 힐 차관보는 대북협상 과정에서 국제적 인물이 됐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끈기있고 탁월한 그의 외교력은 마지막 냉전의 유산이 가까운 시일 내에 청산될 수 있다는 희망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고 극찬했다.

힐 차관보는 부시 대통령의 두 번 째 임기 초반 무렵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소집한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 무력화를 위한 전략회의에서 발언을 자제하고 있다가 “나를 평양에 보내준다면 협상을 이끌어 내겠다”고 말해 시선을 끌었다고 한 참석자가 회고했다.

그러나 이후 2005년에 북한의 달러 위조 문제가 발생하면서 대북협상은 차질을 빚게 됐고, 힐 차관보는 이로 인한 미국 정부의 대북 압박을 완화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듬해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자 역설적으로 부시 대통령은 북한과의 협상 추진을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고, 이는 곧바로 힐에게는 행운으로 작용해 북한과의 일련의 협상이 다시 진전됐다.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핵 전문가로 일했던 캐롤라인 레디는 “우린 북핵 실험에 대한 모든 제재 조치를 중단하거나 단념하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회고했다. 최근의 북핵 협상을 통해 북한은 핵원자로를 폐쇄하고 주요 시설을 불능화 시키기로 했으며 수 천 쪽에 달하는 핵 관련 기록도 미국 측에 넘겨줬다. 힐은 금주 아시아 순방길에 올라 북측에 핵 신고서 제출을 촉구할 예정이다.

또 전례없었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역사적 평양 공연에도 힐 차관보는 상당한 역할을 했다. 심지어 평양 공양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뉴욕필 관계자를 만나 점심 식사를 하면서 로비까지 했다는 것. 그는 뉴욕필의 평양공연 현장에 북측 인사와 함께 참석할 계획이었지만 라이스 장관의 만류로 참석하지 않았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그가 이같은 일련의 성과를 거두기까지는 부시 대통령과 라이스 장관의 전면적인 뒷받침이 있었다는 게 워싱턴 포스트의 분석이다. 힐 차관보는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 라이스 장관과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포함된 조찬 모임에도 가끔 참석하며, 심지어 부시 대통령과 면대면 `잡담’을 나눌 정도의 인물이라는 것.

그러나 힐 차관보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엄존한다.

지난 2006년 북핵 협상 당시 협상팀의 차석대표였던 빅터 차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 국장은 “그는 효율적인 협상가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영웅이 되기 위해 언론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인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미 국무부 내 일부 비판적 인사들은 그를 `김정힐(Kim Jong Hill)’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가 대북 협상의 실패를 막기 위해 무조건 북한 지도자 김정일에게 양보만 하고 있다는 뜻이다. 핵 전문가 캐롤라인 레디는 “그것은 협상도 아니었다. (당근만 있고) 채찍은 없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힐 차관보는 최근 한 연설에서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말꼬리를 흐린다”면서 일방적인 대북 양보 비판에 대해서도 북한이 냉각탑 파괴장면을 TV 생중계하기로 합의할 가능성이 높다고 반박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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