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닉슨시절 대북 보복 3개 방안 검토

미국은 1969년 발생한 북한의 미 해군 EC-121 정찰기 격추 사건 직후 범정부 차원의 특별팀을 구성, 유사사태 재발에 대비한 다양한 군사보복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리처드 닉슨 행정부 시절인 당시 미국은 △국지적 폭격 △몇개 비행장 공습 △대규모 군사 공격 등 3가지 수준의 구체적인 시나리오 마련에 나섰던 것으로 밝혀졌다.

연합뉴스가 9일 입수한 기밀해제된 미 외교문서에 따르면 닉슨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을 맡았던 헨리 키신저의 주도로 이 같은 계획이 입안됐다.

북한이 1969년 4월15일 미군 정찰기 EC-121을 격추한 지 2주일 뒤인 4월29일 키신저가 닉슨 대통령에게 보낸 메모에 따르면 닉슨 행정부는 사건 발생 직후 국무부, 국방부, 합참, 중앙정보국(CIA), 백악관 등 관련부처로 합동 대책반을 구성해 정치.외교.군사적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미군의 군사적 대응 방안 수립이 늦어지는 문제점이 노출됐으며, 이에 따라 키신저는 비상기구를 상시적으로 설치해 한반도 비상상황시 실행할 수 있는 군사 작전을 강화할 것을 닉슨에게 건의했다.

키신저는 합참이 사건 발생 후 1개의 북한 비행장을 공격하는 작전 계획을 수립하는데 72시간 이상이 걸렸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후 미국은 닉슨의 지시에 따라 유관부처로 구성된 ‘워싱턴특별행동그룹(WSAG)’을 구성, 추후 유사사태 발생에 대비한 계획 마련을 시작했다.

닉슨은 같은 해 5월 16일자로 국무부, 국방부 장관과 CIA국장에게 보낸 메모를 통해 WSAG 구성을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그룹에는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CIA, 합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등에서 참여했다.

WSAG은 `한반도의 군사비상계획’을 의제로 같은 해 7월2일 첫 회의를 소집했으며, 같은 달 11일 두 번째 회의를 여는 등 정례 모임을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7월11일 백악관 상황실에서 열린 WSAG 두 번째 회의록에 따르면 WSAG는 3단계의 군사적 개입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키신저는 당시 낮은 강도에서는 국지적 폭격, 높은 강도에서는 대규모 군사개입(heavy military involvement)이 포함된 옵션을 개발토록 지시하면서 중간 수준에서 북한의 몇몇 비행장을 공격하는 옵션도 만들도록 지시했다.

특히 키신저는 CIA에 북한 측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신경중추(nerve-center)적’ 핵심 목표물을 선정하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키신저는 “최근과 비슷한 도발에 대해 (닉슨) 대통령이 대응책을 선택한다면 아마 중간 옵션을 선택할 것”이라고 언급, EC-121기 격추 사건 이후 백악관의 분위기가 매우 강경했음을 시사했다.

앞서 같은달 8일 키신저에게 보낸 국가안보회의(NSC)의 메모에 따르면 WSAG의 대북 비상계획은 발생될 수 있는 상황과 이에 대한 군사적 대응방안의 장.단점 및 대응책 실행에 따르는 실시간 군사.외교적 시나리오 개발을 목표로 했다.

또 WSAG가 개발한 대북 군사대응 파일은 백악관 상황실에 보관해 두고 정기적으로 업데이트 하기로 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미국은 WSAG 활동과는 별도로 군을 중심으로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해 25개 군사작전 계획을 담은 `레드 북’을 이미 작성해 뒀던 것으로 밝혀졌다.

WSAG의 7월2일 첫 회의록에 따르면 WSAG에 참여한 합참의 넬스 존슨 중장은 25개 작전계획에 포함된 구체적인 북한 목표물에 대해서도 브리핑했다.

이 밖에 닉슨 행정부의 백악관은 당시 국가안보연구메모(NSSM) 34호를 통해 `한반도 비상계획(Contingency Study for Korea)’을 검토하도록 하는 등 당시 한반도 유사사태 발생에 대한 군사적 대응 방안 검토가 활발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은 1968년 1월 원산항 앞 공해상에서 미국의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를 납치했고, 1년 뒤인 1969년 4월 청진 남동쪽 상공에서 정찰 중이던 미 해군 EC-121정찰기를 격추해 탑승 승무원 31명 전원을 숨지게 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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