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금융조치’ 법적근거 확실히 알아보자

외환은행에 이어 신한은행과 수협도 마카오 소재 은행인 ‘방코 델타 아시아’(Banco Delta Asia ∙ BDA)와의 환거래를 중지했다. 국내 은행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은행들이 BDA와의 관계를 끊고 있다. 이제 국제금융업계에서 BDA가 설 자리는 없어졌다.

◆ 작은 BDA, 큰 미국 시장

국내 언론은 이것을 ‘대북 금융제재 동참’이라고 표현했다. 애초에 BDA에 제재를 가한 것은 미국이었고, BDA 제재의 주된 원인은 북한의 돈세탁 창구라는 이유에서였다. 따라서 BDA와 관계를 끊는 것은 이러한 BDA를 고립시켜 북한의 불법행위를 제약하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대북 금융제재 동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윤추구를 최고 가치로 삼아야 하는 은행들의 입장에서는 대북 금융제재에 찬성하든 안하든 BDA와 관계를 끊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처해있다. ‘작은 BDA’에 연연하다 미국이라는 ‘큰 금융시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세계 각국의 은행에게 “BDA와 관계를 끊으라”고 직접 요구하거나 압력을 가한 적이 없고, 또 다른 나라 은행이 미국의 요구를 들어줘야 할 이유도 없다. 미국은 자국내 애국법에 따라 북한의 불법행위 방지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또 예컨대 ‘미국내 금융기관은 BDA와 같은 불법 돈세탁을 하는 은행과 거래하는 은행과는 거래할 수 없다’는 내용의 특별 행정명령이 준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예를 들면, 한국의 A은행이 BDA와 거래한다면 미국의 금융기관은 A은행과 거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A은행 입장에서는 공연히 BDA와 거래하다 거대한 미국 금융시장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 때문에 세계 금융기관들은 ‘알아서’ BDA와의 관계를 끊고 있다.

미국의 대북금융제재의 법적 근거는 ‘애국법(Patriot Act) 311조 5항’에 따른 것이다.

◆ 美 ‘애국법’이란?

미국의 ‘애국법’은 2001년 9.11테러 이후 40여 일만에 신속하게 만들어졌다. 테러에 대응하기 위한 종합대책을 담아놓은 법이다. ‘전시(戰時) 특별법’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조항들을 담고 있다.

이 법은 원래 4년 효력의 한시법으로, 지난해 말에 효력이 다하게 되어있었다. 그러나 백악관은 “테러와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법의 무기한 연장을 주장해왔고, 지난해 말 하원은 시효연장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상원에서 이를 거부, 현재 오는 3월 10일까지 연장되는 것으로만 합의된 상태다. 현재 공화-민주 양당간 협상이 진행 중이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1일 국정연설에서 애국법의 연장을 호소한 바 있다. 공화당 의원들은 기립 박수, 민주당 의원들은 쓴웃음으로 응답했다.

애국법은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수사 ∙ 정보기관에 광범한 권한을 줄 수 있게 되어있다. 테러 모의가 의심되는 통화를 감청하는 것은 물론 계좌 추적과 의료 기록, 미국 전역 도서관의 대출 기록까지 검토할 수 있다.

◆ ‘애국법 311조’ …… 금융 분야의 테러 대응

애국법 제3장은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수상한 금융거래를 적발, 대처하는 내용을 주로 담고 있다. 법에는 “국제적인 돈세탁과 금융 테러리즘을 방지, 발견, 기소하기 위하여 은행비밀법(BSA)의 돈세탁 방지 조항을 개정한다”고 되어 있다. 이것이 최근 대북 금융제재의 근거가 되고 있고 있는 ‘애국법 311조’이다.

법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장관은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Financial Crimes Enforcement Network)를 구성하여 특정 금융기관을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목하고 이를 공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 ‘주요 대상’으로 ‘방코 델타 아시아’가 선정되어 현재 수족이 묶이고 있는 중이다.

‘애국법 311조’에는 ▲이러한 우려대상을 지목하여, ▲그들의 행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돈세탁이 우려되는 대상으로부터 미국의 금융기관을 보호할 수 있다고만 되어있지,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다. 다만 제5항에 “특별 대책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고 되어있는데, 이는 통상 별도의 행정명령으로 제시된다.

지난해 9월 미 행정부는 연방관보를 통해 ‘애국법 311조’를 실행할 구체적인 제재 조치를 대통령 행정명령(Executive Order) 형식으로 공개한 바 있으며 검토를 마치면 곧 행동에 옮겨질 것이다. 행정명령은 의회를 동의를 구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애국법만 존속된다면 강력한 금융제재조치가 완전한 법적 정당성을 갖추게 될 전망이다.

초안이 공개된 행정명령의 내용은 모법(母法)만큼이나 강력해 ▲미국의 어떤 금융기관도 재무무장관이 지정한 ‘돈세탁 우려 대상’과 거래를 할 수 없고 ▲‘돈세탁 우려 대상’이 제3의 금융기관 및 시스템을 이용해 미국의 금융기관과 거래하는 것 역시 규제한다는 내용이다.

미국 금융기관이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에 비추어 볼 때, 결과적으로 미국 재무부장관이 지목한 ‘돈세탁 우려 대상’은 대외적인 환거래를 거의 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 미국이 발표한 ‘BDA-북한-마카오 커넥션’

미국은 연방관보를 통해 BDA를 ‘돈세탁 우선 우려 금융기관’으로 발표했다. 효력은 2005년 9월 20일부터 발생했다. 관보에는 이러한 발표의 배경을 ①법률조항 ②방코 델타 아시아 ③마카오 ④북한 등 4개 항목으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관보는 ‘북한’ 항목에서 “전문가들은 북한이 범죄활동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을 연간 5억 달러쯤으로 추정하고 있다”면서 ▲2004년 12월 터키 경찰이 7백만 달러 상당의 불법 마약을 소지한 혐의로 2명의 북한 외교관을 체포하였고 ▲같은 해 초 이집트 당국이 15만 달러 상당의 금지된 선적 품목을 운반하려던 2명의 북한 외교관을 추방한 사례 등을 제시하였다. 관보는 “1990년 이래로 북한은 20여 개 나라들에서 발행한 50여 차례의 마약거래 체포사건과 관련이 있으며, 북한이 마약 밀매로 벌어들인 수익은 연간 1~2억 달러 정도”라고 추산했다.

또한 “지난 30여 년 동안 수퍼노트(Super Note)를 유통시킨 혐의로 많은 북한 관리들이 체포되었다”면서 “최근 10년간 미국은 4,500만 달러 이상의 위조수표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배경 아래 북한의 불법행위와 BDA, 그리고 마카오가 어떻게 연관이 되어있는지를 설명했는데, BDA는 20여 년 동안 북한의 정부 기구와 무역회사들에게 금융서비스를 제공해 오면서 ▲북한의 무역회사가 엄청난 양의 위폐를 세탁하려다 마카오 당국에 적발되어 추방되었음에도 북한과 금융거래를 계속하고 있고 ▲BDA 고위 관리들이 이러한 북한 관리들과 함께 일하며 돈세탁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으며 ▲마약 밀매, 위폐 유통, 가짜 담배 유통 등 각종 불법활동을 하고 있는 북한 기업의 범죄 행위와 관련된 송금을 도와왔다고 밝혔다.

또한 마카오가 돈세탁 방지 법안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아 이러한 불법 활동의 무대가 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 정부에 우회적으로 ‘대책’을 촉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관보는 이러한 사실을 공개하는 것이 “국제금융공동체의 이목을 집중시켜 BDA를 범죄행위를 근절시킬 수 있다”면서 “돈세탁 또는 다른 범죄 목적을 위해 이용되는 은행의 능력은 제한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 김정일의 한 가닥 희망 ‘애국법 폐기’ – 가능성 있나?

최근 북한은 미국이 공화-민주간 줄다리기를 계속하다 결국 애국법이 폐기되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지나친 사생활 침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일부 조항에 제동을 걸고 있기 하지만 애국법 자체의 폐기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미국 상원은 지난해 말 법안의 6개월 연장을 통과시켰지만 하원에서 1개월 연장으로 축소해 법안을 돌려보냈다. 하원에서 통과시킨 법안을 상원에서 축소한 것에 반발해 오히려 1개월로 단축시키는 ‘심통’을 부린 것이다. 민주당이 협상을 지지부진 끌고 가려 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이기도 하다.

여하튼 애국법 311조가 폐기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금융상 불법행위를 차단해야 한다는 것에는 미국 정가에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허튼 기대를 하기보다는 신속하게 불법행위를 중단하는 것이 북한의 입장에서 이롭다.

안경희 국제팀장 solidarity@dailynk.com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