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금융조치, 北核 판가름 내는 승부수

미 재무부 단속반이 한국정부에 사실상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주범으로 지목된 북한을 재정적으로 고립시키고 위폐문제에 대한 강력한 조치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향후 6자회담의 향배와 한반도 주변 정세에 긴박감마저 흐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금융조치에도 북한이 6자회담과 위조달러 문제에 분명한 입장 변화를 보이지 않을 경우 전방위적 대북 압박에 돌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대한 미국의 금융조치로 허를 찔린 북한이 특유의 ‘벼랑 끝 전술’로 나올 경우 미-북간에 전에 없던 긴장국면이 진행될 수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24일 “우리에 대한 미국의 제재는 우리를 질식시키려는 제도말살행위로써 조-미가 호상 존중하고 평화공존할 데 대한 6자회담 공동성명의 정신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라며 격렬히 반발했다.

주한 미 대사관이 공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미 재무부 글래이서 부차관보는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대응체계 강화를 위해 한국이 WMD 확산주범에 대한 재정적 고립을 강화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 미국은 WMD 확산의 대표적인 우려국가로 이란 시리아와 함께 북한을 포함하고 있어 결국 북한을 재정적으로 고립시키는 데 동참해달라는 의미다.

또 글래이서 차관보는 위조달러의 주체로 북한정권을 지명하면서 “한국도 비슷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BDA와 유사한 조치란 북한의 불법활동과 WMD 확산에 흘러 들어갈 수 있는 불투명한 자금을 차단해달라는 요구로 해석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남측이 북한에 제공하는 경협자금과 북측의 수익금을 포함할 수도 있다.

미 재무부 단속반이 이례적으로 WMD문제를 강조한 배경에는 북한에 이어 이란까지 핵개발에 나서자, NPT라는 국제 핵 질서가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됐다는 지적이다. 북한, 이란 등의 WMD 확산 우려국가에 대해 금융제재를 발동해 손발을 묶어 보겠다는 의도다. 서방 관측통들은 미국이 이미 이란에 대한 금융제재에 들어가 전면적인 경제제재로 확대될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일단 미국의 의도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북한과 이란의 신속하고도 격렬한 대응이 이를 입증한다.

북한은 금융조치가 발효된 이후 물 밑에서 신속하게 타협안을 내고 김정일까지 나서 중국의 원조를 구하는 바쁜 일정을 보였다. 한 전문가는 북한이 거래하는 은행에 대한 금융조치는 김정일의 통치자금이 끊긴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북한 김정일 입장에서는 정권의 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금융조치는 효과적인 정책수단

위폐문제로 촉발된 BDA에 대한 금융조치는 본질상 북한의 불법행위에 대한 미 재무부의 방어적 법적조치다. 이 법적조치가 북한 핵문제를 다룰 수 있는 미국의 효과적인 수단을 제공하고 있다. 또 시작이야 어찌됐든 미국이 강력한 칼자루를 쥔 셈이다. 미국이 핵문제를 우선하고 있는 조건에서는 금융조치가 6자회담과 연계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태도 여하에 따라 그 범위와 강도가 달라진다는 것.

따라서 미국의 이번 금융조치는 북한의 핵문제를 판가름 내는 승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이 6자회담을 계속 거부하거나 경수로 제공을 고집할 경우 미국은 BDA에 대한 조치를 넘어선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홍콩과 마카오,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에 분산된 김정일의 비자금에 미국은 직접적인 제재를 가할 수 있다. 스위스 소재 ‘크레디트 스위스 퍼스트 보스턴(CSFB)’ 은행은 24일 북한과 신규거래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글래이서 부차관보가 WMD 확산과 위폐제조의 몸통으로 북한을 지목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은 전방위적인 압박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금융조치를 국제사회로 확대시켜 포위망을 좁혀가는 것 이외에도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을 통한 해상봉쇄도 70여개국의 참여를 통해 실시할 수 있다.

미국이 대북 재정고립을 공언한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은 25일 신년기자회견에서 “미국 일각에서 제기되는 강경책에 동의하지 않으며, 미국 정부가 대북 압박정책을 펼 경우 한미간 이견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 대한 어떠한 압박도 반대해온 한국정부의 태도를 볼 때 한미갈등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특히 남북관계가 정권 재창출을 위한 국내정치용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미국의 대북 압박을 두고 국내에서는 상당한 국론의 분열을 겪을 수 있다. 북한이 6자회담에서 전향적인 핵 폐기 프로세스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남북공조와 한미동맹의 갈림길에 서는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