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고강도 압박 행보..北 결단 주목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친서’ 전달 이후 `핵 프로그램 신고’를 향한 미국의 압박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으나 북한의 침묵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10.3합의에서 북한이 약속한 ‘핵 프로그램 신고’ 시한인 연말이 다가오면서 북한이 어떤 방향의 선택을 하느냐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의 선택이 향후 전체 북핵 협상의 향방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분주한 미국 = 미국의 움직임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이미 지난 5일 두번째 방북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를 통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북.미 관계정상화에 앞선 충실한 핵신고와 비핵화’를 촉구하는 친서를 보낸 데 이어 의회까지 영변 핵 시설 불능화를 포함한 비핵화에 필요한 자금 지원을 약속했다.

북한 비핵화를 위해 미국 조야가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미 상원 외교위원회의 바버라 박서 동아태 소위원장은 12일 비공개 회의에서 힐 차관보로부터 이달 초 평양 방문 및 대북 협상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들은 뒤 “부시 행정부가 북한이 외부 세계에 대한 위협이 되지 않도록 핵 협상을 진전시키는데 1억600만달러(약 1000억원)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이는 합리적인 금액”이라며 승인 방침을 확인했다.

이 자금은 2.13 합의에 따른 대북 중유 지원과 영변 핵시설 폐쇄 및 검증에 대부분을 할애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협상을 총책임지고 있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박서 소위원장의 발표에 앞서 북한이 모든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기 전에는 북한과 폭넓은 관계개선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례적인 경고’도 날렸다.

외교가에서는 라이스 장관의 발언에 대해 북한이 취할 향후 행보를 ‘좋은 선택’과 ‘나쁜 선택’으로 구분하고 이에 맞춰 미국의 행보를 정할 것임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다시 말해 북한이 부시 대통령 등이 요구하고 있는 `충분하고도 완전한 핵 프로그램 신고’를 할 경우 북한과의 관계정상화 행보를 속도 있게 전개해 내년말 부시 대통령 임기내에 획기적인 변화를 추진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반대의 경우가 상정돼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북한의 초청에 의해 내년 한국의 새정부가 출범하는 2월26일 평양에서 뉴욕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예정돼있다. 따라서 북한이 ‘좋은 선택’을 할 경우 ‘평양의 선율’은 바로 북.미 관계정상화를 촉진하는 합창이 될 것이란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미국이 요구하는 신고내용은 ‘핵탄두 수, 무기급 핵물질 생산량, 핵 기술.물질 이전 공개’ 등 3가지요 요약되지만 이 가운데 핵심은 역시 제2차 핵위기의 발단이 된 농축우라늄프로그램(UEP) 문제다.

UEP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미 의회는 물론 강경파들이 부시 대통령을 향해 ‘5년간 도대체 뭘 했느냐’는 비난을 퍼부을 것이 뻔한 상황이다.

미 의회가 비핵화 자금 지원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지만 UEP 문제가 답보를 거듭할 경우 분위기는 언제든 돌아설 수 있다. 이미 샘 브라운백 등 상원의원 4명은 현지시간 11일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와 관련, 부정적인 결의안을 제출해놓은 상태다.
◇북한의 선택은= 북한은 부시 대통령의 친서 전달 사실을 신속하게 공개한 뒤 열흘 가까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송민순 외교부 장관의 표현대로 “고비를 맞고 있는” 국면에서 또다시 방향타를 움켜진 북한은 상황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경우의 수를 따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13일 북미관계가 지난해 핵실험 이후 ‘밀월관계’를 구가하고 있다면서 동시에 향후 북미관계의 척도는 ‘미국의 행동’에 달려있다고 보도했다. 일단 테러지원국 해제를 비핵화 속도에 맞춰 연내 또는 가급적 빠른 시일 내 해달라는 것으로 읽혔다.

북한 내 기류는 다소 미묘해 보인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인사들의 전언에 따르면 북한은 부시 대통령의 친서를 ‘미국이 굴복한 것’이라는 선전에 활용하고 있다. 또 지난 5일 조선 중앙통신은 “우리는 미국이 조미관계를 원래 상태(적대상태)로 몰아가도 나쁠 것이 없다”고 하기도 했다.

북한 특유의 ‘벼랑끝 전술’이기도 하겠지만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좋을 지를 따져보고 있는 내부의 복잡한 심사가 얽혀있는 것 같다는 게 외교소식통들의 관측이다.

실제로 북한은 현안인 북핵 프로그램 신고와 관련해 미국이 요구하는 답안지를 손에 쥐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답안을 채워넣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뭔가 머뭇거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과거보다 다소 진전된 답변을 쓰기는 쓸 것 같은데 수위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는 뉘앙스다.

실제로 북한은 UEP 문제의 핵심인 수입 알루미늄관과 관련해 ‘미사일 부품에 썼다’거나 ‘항공기 제작용으로 썼다’는 얘기를 비공식 협의 자리에서 ‘흘리듯이’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문제는 북한이 언급한 용처에는 이 알루미늄관이 쓰일 수 없는 것으로 전문가들이 판단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알루미늄관 뿐 아니라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이 지난해 자서전에서 북한에 넘겨졌다고 밝힌 ‘원심분리기 20개의 행방’도 따져야할 문제다.

북한은 이에 대해 “없는 것을 어떻게 있다고 하느냐”는 답변을 고수하고 있지만 워낙 증언내용이 구체적이어서 어떤 형태로든 답변을 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 접점찾을까= 힐 차관보는 “우리는 연내에 완전한 핵 프로그램 신고가 이뤄지기를 바라고 있다”면서 “이달 말에 북한과 추가 협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말이라면 크리스마스 연휴를 끝내고 뉴욕 채널을 통해 북한이 모종의 답변을 할 것임을 `시사’ 또는 기대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 전에 6자회담 의장인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북한을 방문해 김계관 외무성 부상 등 협상 파트너와 협의한다. 북한이 우 부부장의 방문을 계기로 신고서를 제출할 지, 그리고 그 내용이 미국이 요구에 부합할 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방북의 중요성을 감안해 만일 우 부부장이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친서를 갖고 갈 경우,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이 이번 기회에 후 주석은 물론 부시 대통령을 향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할 경우 극적인 효과가 예상된다.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베이징까지 가서 우부부장과 만나 ‘사전협의’한 것은 현재의 상황이 전체 6자회담에 얼마나 중요한 지, 그리고 이번 방북을 통해 우 부부장이 해야 할 일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 지를 재확인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외교 소식통들은 “북한이 C 학점 정도를 내놓으면 좋을 것”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미국이 현재 보이고 있는 협상의지를 볼 때 북한이 UEP 문제나 시리아 핵 이전설에 대해 ‘납득할 수준의 해명’을 할 경우 미국도 판을 깨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당초 미국은 지난 4년여간 사용해오던 ‘고농축우라늄(HEU)’이라고 했던 용어를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으로 완화시키는 데도 동의한 상태다.

따라서 북한이 알루미늄관 수입이나 원심분리기 관련 사실을 ‘인정’하되 ‘연구용에서 멈췄다’라고 해명하더라도 6자회담은 앞으로 전진하는 계기를 잡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반대로 북한이 끝까지 ‘없는 것을 있다고 강요하지 마라’는 식으로 나올 경우 대선으로 과도기에 들어가는 한국이나 미국의 분위기를 감안할 때 6자회담은 장기 공전 사태에 직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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