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對北 대화 형식 ‘금기’ 허무나

미국과 북한의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간 전격적인 베를린 회동은 북.미 양자간 직접 대화라는 형식 측면에서 특히 의미심장하다.

베를린 회동의 이러한 형식과 내용은 6자회담의 전도를 가늠해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올해들어 일각에서 거론되는 미국의 대북 정책기조의 현실주의화 여부도 검증해볼 수 있는 중요한 척도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북한 외무성 김계관 부상간 베를린 회동은 다른 6자회담 참여국 정부들에도 미리 통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 직접 대화 = 한 외교소식통은 16일 북.미 베를린 회동에 대해 “계속되는 대화의 일환”이라면서도 힐 차관보의 대북 접촉 형식에 대한 “제약이 조금씩 줄어들고 자유로와 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풀이했다.

부시 행정부는 그동안 북한의 대미 직접 대화 요구에 대해 미국이 이를 거부한 적이 없다면서도 “6자회담의 맥락 속”임을 강조하고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초청 형식으로 베이징에서 일단 북.미.중 3자 대표가 만난 뒤 중국 대표가 자리를 비켜주는 방식으로 북.미 양자대화를 갖는 게 상례였다.

부시 행정부들어 미국의 북한 접촉 방식은 초기 제임스 켈리 차관보가 6자회담 휴식시간에 북한 대표를 만날 때 지침받은 대로 “출입문을 조금 열어두고” 차를 마시는 방식에서 저녁식사도 함께 하되 매파(媒婆)가 일단은 동석했다가 자리를 비켜주는 수준에 이어 베를린 회동 형식으로 진화한 셈이다.

이러한 변화가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이란 집중과 딕 체니 부통령 중심의 대북 강경 목소리의 약화 등과 직결된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그러나 윌리엄 테일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은 지난 11일 주미 홍보원 강연에서 부시 행정부가 중동문제 때문에 북한에 현실적인 접근 전략을 펼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고위급 대표단의 평양 파견 제안 가능성과 함께 “6자회담 안팎을 불문하고 북한에 직접대화를 제안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었다.

이번 베를린 회동에 대해서도 톰 케이시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장소만 다를 뿐 예전과 마찬가지로” 6지회담 틀속의 것이라고 강조했으나, 기존의 대북 대화 형식에 비해 파격인 것은 분명하다.

베를린은 1990년대 북.미 대화와 남.북대화에서 주요 회담이나 합의의 장소로 활용된 역사적 사실로 인한 상징성도 크며,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의 장소로 선호하는 장소라는 점에서 미국의 ‘양보’나 ‘변화’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작지만 의미있는 신호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베를린에선 1995년 북.미간 경수로 회담 96년 북.미간 1차 미사일 협상, 99년 북.미간 미사일 협상 타결, 2000년 1월 북.미간 고위급회담을 통한 포괄적 관계개선 합의, 2000년 3월 남북정상회담에 앞선 김대중(金大中) 당시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 2005년 1월 정동영(鄭東泳) 당시 통일장관의 베를린 연설 등이 이뤄졌다.

◇회동 내용 = 미 국무부는 16일 오전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북한 외무성 김계관 부상간 회동 사실만 발표한 뒤 오후 정례 브리핑에서 톰 케이시 부대변인을 통해 오전과 오후 여러시간에 걸친 회동에서 “좋은 의견 교환”이 있었으며,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케이시 대변인은 그러나 6자회담 재개 날짜가 정해진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회동 내용을 더 이상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힐 차관보는 베를린 방문에 이어 한국, 중국, 일본을 순방할 예정이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북.미간 베를린 회동 내용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요체는 송민순(宋旻淳) 외교장관이 최근 방미 때 “조만간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 대로 김계관 부상이 베이징 6자회담에서 받아든 영변 원자로 가동 중단 등과 상응조치들이라는 미국의 제안에 대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답을 갖고 나왔느냐에 있다.

그러나 북한이 핵실험을 통해 손에 넣은 핵무기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어서 이번 베를린 회동에서도 김계관 부상이 조건부 답변을 내놓았을 가능성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