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北 고사할 때까지…‘자멸정책’ 구사”

피터 벡 국제위기그룹(ICG) 동북아 사무소장은 31일 연합뉴스와 만나 주한미군, 북한 핵실험, 한미 정상회담,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등 현안에 대한 견해를 솔직하게 밝혔다.

벡 소장은 특히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에 대한 전망, 북한의 핵실험이 임박한 것이 아니라는 분석 등과 함께 다음달 14일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정치적 노련함과 수완을 보여야 할 것”이라는 권고도 내놨다.

미국의 대북 정책이 “고사할 때까지 내버려 두는 ‘자멸정책’(policy of collapse)”이라고 진단한 벡 소장은 “북한은 핵실험을 해서 얻을 게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벡 사무소장과 일문일답.

–주한미군 철수설에 신빙성이 있나.

▲럼즈펠드 장관이 갑자기 북한이 남한에 대한 임박한 위협이 아니라고 말한 것은 미군이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됐다는 ’명백한 신호’다.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이 북한의 대남위협에 대해 언급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 무슨 뜻이겠느냐.

–북한의 위협이 사라진 후에도 ’중국 억지’라는 전략 차원에서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할 것이라는 일각의 분석이 있는데.

▲’전략적 유연성’이 강화될수록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늘어난다. 군대가 한 곳에 고정적으로 있어야 한다는 과거의 지리적인 제약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아시아 역내에는 일본, 한국, 괌 외 중앙 아시아에도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전지구적 차원에서 봤을 때도 한국의 중요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 한미 정상회담은 어떤 분위기에서 진행될 것으로 보나.

▲전시 작전통제권, 북핵문제 등 한미 간 입장이 첨예한 사안들이 불거진 미묘한 시점이라 양국 정상이 정치적 노련함과 수완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한 정상이 본인의 의제를 ’너무 세게 밀면’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될 수 있으면 정상 간 ’이견’이 있다는 사실을 서로에게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경우는 피해야 할 것이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설’에 대해 아는 바는.

▲만약 김 국방위원장이 중국에 갔다면 의미가 있다. 이를 계기로 중국 측이 북한에 ’태도를 바꾸라’는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특별열차에 탄 것은 김 위원장이 아니라 장성택 부부장이라는 소문이 있다. 장 부부장이 유력한 후계자로 꼽히고 있기 때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 대한 미국의 조치와 9.19 공동성명이 나온 시기가 일치했는데.

▲BDA 조치를 취할 때만 해도 공동성명이 나올 줄은 몰랐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8월 초에 나온 ICG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계좌가 중국과 러시아에만 남아 있다는데.

▲중국의 경우 북한 계좌를 모두 동결했을 때 야기될 수 있는 북한 내 불안 때문에 그렇게까지 못할 것이다. 북-중간 교역은 현금 거래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며 현재 규모도 꽤 크다.

미국이 앞으로 러시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일 텐데 이에 대한 러시아 측 반응이 주목된다. 베트남처럼 곧바로 미국 측의 제안에 응하지는 않겠지만 동의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핵실험할까.

▲당장은 안 할 거다. 에이스 중 에이스 카드인데 그걸 바로 쓰겠나. ’벼랑 끝 전술’은 써봤지만 미국이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질 않았으니 얻을 게 없다. 게다가 중국의 지지를 잃는 역효과가 나왔잖나.

’돌파(breakout)’ 게임이라면 가능성이 있다. 핵 보유국이라고 선언하는 게 의미가 있을 수도 있지만 이 경우 중국의 지지를 잃을 가능성이 역시 존재한다.

북한이 지금 어느 게임을 하고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핵실험을 한다고 해서 지금으로선 얻을 게 하나도 없다. 가장 분명한 것은 김정일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대북정책이 궁극적으로 꾀하는 것은.

▲고사할 때까지 내버려 두는 것, 일명 ’자멸 정책(policy of collapse)’이다. 부시 행정부의 최고위층은 지금 중동 문제에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기 때문에 북한 문제 해결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여력이 없다.

–날로 높아져 가는 미국의 대북제재 압박 수위가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 당사국에 끼치는 영향은.

▲인권 문제를 의제로 올림으로써 일본 측의 입장이 반영이 돼 그 쪽에선 긍정적 반응을 얻어냈다. 한편 한국 정부로서는 더 큰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주목할 점은 미국에서는 대북 정책과 관련해 그간 존재했던 좌파와 우파 간 간극이 좁혀져 가면서 의견들이 대체로 수렴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이 한국과의 차이점이다.

인권 문제의 경우 다음 달에 (ICG)보고서가 나올 텐데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젊은 여성이며 이들이 중국에서 힘들게 지낸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더 이상 무시해도 될만한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한국에서 반미주의는 한 풀 꺾인 것으로 평가했는데.

▲반미주의가 문제인 게 아니라 반미 시위 등을 통제불능인 지경까지 내모는 정부의 ’미숙함’과 ’의지 박약’이 한미동맹의 위협요인이다.

전체 인구가 5천만인 나라에서 몇 천명의 시위대가 그렇게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문제다. 미국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고 있다. 미 국방부로서는 한국이 한미동맹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지 않겠나.

–작통권 이양 논란에 대한 견해는.

▲왜 이 논란이 정치화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하필 왜 이 시점에 이렇게 공개적으로 하는지, 타이밍에 큰 문제가 있다. 특히 한일 관계가 나쁘고 북한이 이렇게 도발을 시도하는 와중이다. 이런 때일수록 한미 관계가 돈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통령과 주요 언론사 간 대결 구도가 심화하고 있는데.

▲바깥에서 봤을 때 안 좋다. 한국은 큰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이 안에서 정치인들과 대통령, 언론사 등 주요 행위자들이 싸우고 있으면 좋을 수가 없다.

게다가 보수 언론사들의 기사가 (미국에서도) 모두 읽히고 있고 이러한 내용들이 워싱턴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의 생각에 분명 영향을 끼친다. 한 목소리를 낼 수가 없으면 한국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