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北핵보유국’ 기술에 北 오판할 수도”

미국 정부 산하 기구에서 최근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간주하거나 인정하는 취지의 보고서가 잇따르고 있어, ‘미국이 사실상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사실상 인정할 경우 공전상태인 북핵 6자회담을 비롯한 버락 오바마 차기 정부의 대북정책, 또 남한·일본·대만 등 북한을 둘러싼 주변국들의 대북·안보 정책에도 상당한 영향이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시각 때문이다.

미 국가정보위(NIC)가 지난달 발표한 ‘글로벌 트렌드 2025’라는 전망보고서에는 “미래에 북한과 같은 ‘핵무기 국가(a nuclear weapon state)’에서 정권교체 또는 붕괴가 발생할 가능성으로 인해 과연 이렇게 취약한 국가들이 자신들의 핵무기를 관리, 통제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고 기술했다.

미 국방부 산하 합동군사령부(USJFCOM)도 지난 10일 공개된 ‘2008 합동작전 환경평가보고서’를 통해 “아시아 대륙 연안은 이미 5개 핵보유국의 본산”이라며 5개 핵보유국으로 중국, 인도, 파키스탄, 북한, 러시아를 명기한 바 있다.

합동작전사령부가 매년 국제적인 군사 동향을 종합, 발간하는 이 보고서는 미 국방부의 ‘미래 작전과 국방 정책’을 수립하는 사전평가서이다.

당시 논란이 확산되자 합동군사령부는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반영한 것이 아니다”고 해명했고, 같은 날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도 “보고서가 미국의 공식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고 진화에 나섰다.

이처럼 미국은 공식적으로 북한의 ‘핵보유국’을 불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정보위와 합동군사령부의 보고서는 미래의 ‘북핵 위협’에 따른 대비책을 고려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기술했을 가능성이 많다.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진 않고 있지만, 사실상 북핵 6자회담을 통해 ‘핵폐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측면에 비춰볼 때 실질적으로 미국은 이미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해 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식견이다.

따라서 이번 보고서에서 북한의 ‘핵보유국’으로 명기했다고 하더라도 대북정책에 있어서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북핵 6자회담을 통한 ‘핵폐기’를 목표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핵무기 보유를 묵인하고 있는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에 대한 핵정책과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제9조 3항에 따르면 핵보유국이란 ‘1967년 1월1일 이전에 핵무기와 그밖의 핵폭발 장치를 제조하고 또 폭발시킨 나라’로 정의된다. 따라서 여기에 해당하는 나라는 미국·러시아·영국·프랑스·중국 5개국이다.

하지만 2005년 4차 6자회담 당시 6자회담 참가국들은 9·19공동성명에서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할 것”을 공약화했다고 적시, 이때부터 공식적으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것과 다름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된다.

아울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는 민간연구기관인 미국의 진보센터에서도 최근 합 보고서에서 북한을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과 함께 ‘사실상의 핵 능력국가( defacto nuclear state)’로 표현한 바 있다.

오바마 당선인도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 7월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대화를 하지 않고 있을 때 북한은 핵무기 8개를 개발했다”며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거론한 바 있다.

때문에 미국 정부 산하 기관의 보고서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기술했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북핵을 비롯한 대북정책의 변화를 수반하는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다만 이 같은 보고서가 북한의 ‘핵협상’ 태도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의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도 “공식적으로 미국이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정부 보고서에서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신속히 보도했다.

그동안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강변하면서 6자회담을 통한 ‘핵폐기’ 협상이 아니라 미국과의 직접대화를 통한 ‘군축협상’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다.

김태우 국방연구원 부원장은 “미국은 정치적으론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이미 북한이 핵실험까지 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는 인정하고 있다”며 “단지 북핵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미국은 그동안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부원장은 “미국은 북한이 ‘사용 가능한 핵무기를 가졌느냐’를 중심으로 핵보유국 지위 인정 여부를 결정한다”며 “국방부 보고서에 실렸다고 해서 미국의 기존 협상 자세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보고서는 ‘핵보유국 가능성’에 대한 준비태세를 강조한 것일 뿐”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도 윤 교수는 “이미 미국은 6자회담을 통해 핵폐기를 시도하고 있다”면서 “법적으로는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이미 핵실험을 했으니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은 이미 ‘핵보유국’인데, 이를 공식·비공식으로 인정했는냐 안했느냐의 차이”라며 “2006년 북한의 핵실험 이후 미국의 북핵정책이 변화했기 때문에 (보고서 등에 기술됐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대북한 핵정책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표현을 하지 않고 있을 뿐이었지 이미 미국은 북한의 핵보유를 정책에 반영했다”며 “결국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선다 하더라도 미국의 북핵정책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연구위원은 “미국은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지만 폐기하겠다는 것”이라면서 단지 “북한이 ‘미국이 공식보고서에서 이번이 처음이다’고 한 만큼 북한에 오판을 불러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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