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26일(현지시간) 북한 은행 10곳과 북한인 26명에 대한 무더기 제재를 가하며 대북 압박 고삐를 바짝 조이고 나섰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사이 말폭탄 대결로 군사적 옵션 검토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일단 미 정부는 외교적·경제적 압박을 우선순위에 두고 북한 외화자금줄을 차단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제재는 트럼프 대통령이 사상 처음으로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에 가까운 대북 독자제재 행정명령(13810호)에 서명한 지 닷새 만에 이뤄진 첫 이행조치다.
미 재무부는 이날 농업개발은행, 제일신용은행, 하나은행, 국제산업개발은행, 진명합영은행, 진성합영은행, 고려상업은행, 류경산업은행 등 8개 북한 은행을 제재대상으로 지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들 은행의 중국, 러시아, 홍콩, 리비아, 아랍에미리트(UAE) 국외 지점장 등으로 근무하는 북한인 26명도 제재 명단에 올랐다.
이밖에도 기존의 13722호 대북제재 행정명령을 적용해 조선중앙은행과 조선무역은행도 제재대상으로 지정됐다.
이로써 트럼프 정부는 지난 1월 출범 이후 3월 31일, 6월 1일, 6월 29일, 8월 22일과 이번까지 총 5차례에 걸쳐 단체 33개 및 개인 48명을 대북 제재대상으로 지정했다.
이번 제재 대상 발표는 향후 중국 대형은행을 비롯한 외국 금융기관과 북한 은행들 간의 거래를 차단하기 위한 사전 조치라는 데 의미를 둘 수 있다. 현재 미 정부는 외국 은행과 북한 간의 거래를 중단시켜 북한 핵·미사일 개발에 사용되는 외화 유입 루트를 전면 차단하겠다는 구상에 초점을 맞춘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의 13810호 대북제재 행정명령도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개인과 기업, 은행 등에 대해 미국과의 금융 거래를 봉쇄하는 이란식 세컨더리 보이콧을 적용하는 게 핵심이다. 특히 대북제재에 미온적인 중국과 러시아를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 역대 미 정부의 대북제재 중 가장 강력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한 이번 제재를 시작으로 미 정부는 북한 은행과 거래하는 외국 금융기관이 미국 국제금융망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세컨더리 보이콧’ 조치를 본격 확대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이날 성명에서 “전 세계에서 북한 은행과 이들 은행을 대신해 활동한 조력자들을 겨냥한 것”이라면서 “평화롭고 비핵화된 한반도라는 우리의 광범위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북한을 완전히 고립화하려는 전략을 한 단계 진전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미 재무부도 이날 제재에 대해 “북한에 대해 가해진 역대 제재 중 가장 강력한 내용을 포함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2375호 결의를 완수하기 위해 취해진 조치”라면서 “북한의 국제 금융시스템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헤더 노어트 미 국무부 대변인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미국의 이번 대북제재에 대해 “평화적 압박 활동의 일환으로 이뤄진 ‘전면적 조치’”라면서 “미국 정부가 여러 수단을 갖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노어트 대변인은 특히 “물론 군사적 수단도 한 측면이지만, 그건 별개”라면서 “외교적, 경제적 수단은 중요하다. 북한을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총체적 목표는 비핵화로, 이를 위해 김정은 정권으로부터 핵 프로그램과 탄도 미사일 실험에 사용되는 자금줄을 차단하는 것”이라면서 “우리는 외교적 제재·압박을 통해 많은 성과를 이뤘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 당국자도 이날 미국의 대북 독자제재 대상 추가 지정과 관련, “이번 미측 조치는 강력한 대북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을 비핵화의 길로 이끈다는 한미 양국과 국제사회의 공동노력에 기여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번 조치는 북한과의 거래의 위험성을 부각시킴으로써 대북 거래 중인 여타 제3국 개인, 단체의 경각심을 고취하고 안보리 결의의 충실한 이행을 위한 국제사회의 의지를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