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년 전이었던 2013년 3월은 대한민국이 북한의 전쟁위협에 한껏 시달리던 때였다. 북한의 ‘2·12 3차 핵실험’이 있은 후, 북한발(發) 수사(修辭)는 곧 미사일이 한강다리에 떨어질 것만 같은 말로는 ‘이미 전쟁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대남 호전적 발언이 극도에 달했다.
그런데 지금 북한 핵 문제는 어느새 잠잠해진 지 오래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미·중 간 물밑 접촉은 있다는데 이렇다 할 가시적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미국은 정녕 북한 비핵화에 대한 의지는 있는 것일까? ‘대화’와 ‘압박’이라는 양동작전이 북한에게 통할 수 있을까?
현 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해 실무부서 수장인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대화와 압박이라는 두 가지 정책수단을 균형되게 효과적으로 활용해 나가는 정책”이라고 명시적으로 정의 내린 바 있다. (2013. 8. 21 내외신 기자회견)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원칙 있는 비핵화 대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북한 지도부의 결단을 유도하는 실효적인 압박도 병행해 나갈 것”이라고 모 학술회의 기조연설(2014. 3. 12)에서 밝혔다. 덧붙여 “안보리가 취한 강력한 대북제재 결의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과연 그럴까? 주무부처 장관의 자신감 있는 어조 뒤에 남는 이 공허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안보리 대북 제재안은 얼마나 효과적이며 미국의 대북 비핵화 의지는 일관된 것일까? 미국이 취해온 ‘전략적 인내’는 ‘전략적 무시’ 혹은 ‘의도적 외면하기’로 왜곡된 것은 혹시 아닐까?
언제부터인가 ‘당근’과 ‘채찍’이란 용어가 좀 더 순화된 느낌의 ‘대화’와 ‘압박’으로 바뀌었지만, 내용은 별반 다르지 않다. 결국 ‘유인’과 ‘강제’이다. 국제 비핵화 레짐을 뒷받침하는 두 가지 큰 정책적 줄기는 유인(Incentive)을 통한 핵 수요 대체와 강제(Compellence)적인 핵 공급 차단이다.
북한은 불변의 핵 의지가 있는데다 이제는 자체 핵 공급이 가능해진 드문 사례이다. 비록 정교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북한 핵 능력에 대해선 북한 정권 내부에서조차 평가가 엇갈리지만 노동당 입장에서는 북한 군부의 주장을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처지겠다.
대화와 압박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조건 내지 동인(動因)은 무엇일까? 대화를 통해 ‘얻을 것(Something to gain)’이 있거나 압박에 의해 ‘잃을 수 있는 것(Something to lose)’이 있어야 한다. 핵심은 바로 이 부분이다. 최소한 ‘그것’의 실체가 있어야 대화든 압박이든 논할 수 있다. 따라서 그 무엇(Something)에 대한 연구와 정책적 합의가 선행돼야 할 일이다. 북한은 아무것도 아쉬울 게 없는 입장(Nothing to lose or gain)이라면 핵무장을 포기하라는 대화와 압박에 선뜻 반응할 필요가 있을까?
현재 압박의 대표적 방법론인 대북제재는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마침 최근 발표에 따르면 김정은이 2012년 사들인 사치품이 약 6.5억 달러에 이른다. 한화로 약 6900억 원. 30평 아파트 한 채 값을 약 6억 9천만 원이라고 어림 계산해도 천 세대 대형 아파트 단지를 통째로 사들일 수 있는 거금이다. 6억 달러가 맞는지 안 맞는지가 본질적인 사항은 아니다. 거액의 현금을 오로지 사치품을 사들이는 데 썼고, 그것은 김정은 본인과 자기를 옹위하는 세력의 충성심을 유지하기 위해 쓰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정도 물량의 거래가 오로지 밀수로만 가능했을까? 아니 가능할 수 있을까? 밀수라면 더더욱 달러화나 유로화 같은 경화(Hard currency) 결재가 필수적이었을 텐데, 금융 제재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어도 가능한 일이었을까? 정말이지 그 많은 현금을 현찰로 쟁여두고 있었단 말인가?
대북 경제제재가 매우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외교부 장관의 주장이 평범한 일반인의 관점에서는 아리송한 대목이다. 전문적인 분석이나 기초자료에 근거한 의심이 아니라 상식차원에서 일어나는 회의감이란 말이다. 정부가 이런 의구심에 대해 설득력 있게 해명할 수 있을 때, 추구하는 정책에 대한 신뢰는 말없이 쌓일 것이다.
2006년 봄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 계좌에 대한 미 재무부의 대북 금융제재가 수위를 높일 때 북한의 반발은 매우 컸다. 즉, 실효적이었다는 방증이다. 그 후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꾸준히 도발할 때 매번 안보리는 대북제재 결의를 했다. 그럼에도 6억 달러어치의 사치품 유입이 가능했다는 것은 둘 중 하나다. 북한은 워낙 고립체제라 그 어떤 외부의 경제적 봉쇄로 받는 타격은 거의 없는데다 해외계좌에 현금이 충분히 쌓여 있거나,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기제(Mechanisam)가 실은 별반 효과적이지 않다거나.
어쩌면 둘 다 맞을 수 있다. 현실에 대한 진단은 철저히 현실주의적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까지 북한 문제에 대한 많은 학자들의 진단은 이상주의적(또는 구성주의적) 접근에 기초한 것이 대부분이다. 북한체제 입장에서 핵 의도의 정당성이나 합목적적인 이유를 헤아리는 것이다.
현재 정부가 추구하는 정책수단으로써 대화와 압박은 실은 다른 차원이 아니다. 현실공간에서 기대하는 압박이라는 것이 기껏 대화의 장(6자회담)으로 이끌기 위한 정도의 수준 아닌가. 북한 스스로 핵을 포기해야 생존이 가능하다고 할 만큼의 ‘압박’을 고민은 하고 있는 걸까?
일부 연구자들이 이 부분을 지적하는 논의를 펼치면 마치 수구적 보수우파의 주장 정도로 치부되는 환경에서 냉철한 대안을 제시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미국도 국무부 내의 동맹파와 비확산파의 노선 경쟁에 기대, 북핵 문제를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폭탄 돌려막기’처럼 말이다.
중국 역할론이 점점 힘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고착된 셈이다. 북한이 추가 핵실험이나 유사한 강력한 도발을 하기 전에 중국이 나서는 것인데, 미국의 바람대로 중국이 그 역할을 할 것인지 의문이다. 어쨌거나 중국으로서도 지금 확보해 둬야 할 더 큰 국가이익이 걸리지 않는 이상, 현상타파는 원치 않는 일이 아닐까? 따라서 현재 북핵 상태(Status quo)에 대한 현상타파의 1차 열쇠는 북한이 쥐고 있는 듯하다. 4차 핵실험이라는 극적 도발을 통해 미국과 중국이 다시 개입하게 하는 상황을 만들면 어떻게든 다시 ‘딜’이 성사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어떤 정책 결정도 상황과 미래를 바라보는 입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법, 대화와 압박이라는 총론적 개념만 제시할 것이 아니라 세부 각론의 구체적 목록을 작성해봐야 할 때이다. 북한과 구체적으로 무엇을 주고받을 것인지, 그 거래 조건은 어떤 가치관에 기초한 것인지 고민할 때다. 어쩌면 국가의 안위를 책임진 기관과 사람들은 이미 해두었다고 믿고 싶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