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HEU’→`EU’로 전환 조짐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의혹 규명작업이 임박한 가운데 미국이 ‘고농축우라늄’이라는 용어 대신 중립적인 ‘농축우라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핵무기 제조를 목적으로 우라늄을 농축하는 것을 의미하는 ‘고농축우라늄’은 2002년 미국이 제임스 켈리 당시 국무부 차관보의 방북때 보유 의혹을 제기한 이래 2차 북핵위기의 대명사 처럼 여겨져 온 용어다. 미국 당국자들은 물론 언론도 일반적으로 이 용어를 사용해왔다.

그러나 힐 차관보는 18일 “북한이 2단계에 해야할 두가지 일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모든 핵프로그램의 완벽한 신고”라면서 “그것은 우라늄 농축(uranium enrichment) 문제로 돌아간다”라고 말했다. 고농축 우라늄이라는 표현 대신 ‘우라늄 농축’이라는 중립적인 용어를 쓴 것이다.

힐 차관보는 지난 16일 서울에서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도 “‘고농축우라늄’이란 용어는 핵무기 제조에 사용되는 것을 말하고 ‘농축우라늄’은 고농축 방식으로 될 수도 있고 저농축 방식으로도 될 수 있는 것”이라며 북한이 보유한 것이 어떤 것이든 정확히 신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었다.

힐 차관보를 포함한 미 측 당국자들이 언제부터 ‘농축우라늄’이란 표현을 쓰기 시작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그 배경에 HEU 의혹규명의 해법이 일부 숨겨져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즉 ‘농축우라늄’이란 용어를 사용할 경우 핵무기 제조를 위한 ‘고농축우라늄’의 가능성과 연구용 ‘저농축우라늄’의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북한의 관련 의혹을 편견없이 규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외교가에서는 보고 있다.

다시 말해 북한이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을 핵무기 개발을 위해 추진했다고 단정하기보다는 연구 등 목적으로 추진했을 가능성까지 열어 둔 채 논의를 진행해야 북.미가 서로 만족할 만한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이런 점 때문인지 북.미 간의 HEU 공방 국면에서 중립 코너에 선 우리 정부는 미국 당국자 등이 ‘고농축우라늄’이란 표현을 사용해온 동안 줄기차게 ‘농축우라늄프로그램(UEP)’이란 표현을 사용하자고 주장해왔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송민순 외교부 장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 판단의 온전성과 북한 입지를 동시에 살릴 수 있는 해결 방안을 모색 중”이라며 의미심장한 화두를 던졌다.

이는 곧 미국은 북한을 향해 ‘무기용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 개발을 시인하라’고 닦아 세우기 보다는 그간 확보한 정보를 바탕으로 ‘우라늄 농축과 관련된 장비를 왜 샀고, 어디에 썼는지 해명하라’는 식으로 해명을 요구하고 북한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답변을 하는 방안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의혹 규명작업이 진행될 경우 2002년 북한 HEU 의혹을 제기한 미국으로서는 자신들이 근거없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하는 동시에 이 문제의 철저한 규명을 바라는 자국 일반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게 되고 북한도 체면손상 없이 난제를 넘어설 수 있게 된다는 게 외교가의 기대섞인 전망이다.

이런 해법은 북한이 ‘우라늄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공장을 확보하는 단계까진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농축우라늄 문제가 시급한 위협은 되지 않는다는 평가에 기초한 것이다.

결국 이 같은 해법이 조만간 북.미 전문가들 간에 이뤄질 협의에서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내 만족할 만한 성과로 이어질지 관심을 모은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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