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행정부가 우리 정부의 대북 ‘중대제안’에 선뜻 화답하고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이 핵폐기에 합의하면 현재 중단 상태인 경수로 건설공사를 종료하고 대신 200만㎾의 전력을 한국이 독자적으로 제공한다는 중대제안이 자칫 핵협상에서 주도권을 쥐고 ‘마이웨이’로 가려는 것 아니냐는 뜻으로 오해될 소지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 2000년과 2002년 대북 전력지원 문제가 거론됐을 당시 미 행정부 내에서는 남측에서 공급된 전력을 북한이 군사적으로 전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들어 반대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더욱 그 지지 배경이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중대제안을 전격 공개한 12일 방한했던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반기문(潘基文) 장관과의 만찬회담에서 “창의적이고 유익하고 긍정적인 방안”이라고 했고, 13일 공동기자회견에서도 “북한의 에너지 수요 충족문제를 확산 위험없이 다룰 수 있는 매우 창의적인 구상”이라고 지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렇듯 부시 미 행정부가 우리 정부의 대북 중대제안을 긍정 평가하고 나선 이유로는 대체로 4가지 점을 꼽을 수 있다.
우선, 그동안 6자회담의 성공을 위해 그동안 중국의 역할에만 ‘목을 매고’ 있었던 부시 행정부로서는 이 방안을 통해 한미관계와 남북관계를 활용하게 되는 ‘또 다른 수단’을 갖게 된다는 점에 주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관련, 미 정부 관계자는 “그동안 중국의 역할에 6자회담의 성패가 달려 있다는 인식이 주류였으나, 한국의 주도적 역할과 한미 및 남북간 협의를 통해서도 북한을 핵 문제 해결에 끌어들일 수 있다는 판단이 한 가지 이유였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그동안 북한을 6자회담장으로 복귀시키는데 중국이 보여준 ‘기대 이하의 역할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불만도 일부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시 말해 미국은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레버리지가 중국 외에는 없다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껴왔으나, 중대제안을 통해 한국이 새로운 레버리지로 등장한 점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측은 특히 지난 5월 남북 차관급회담과 그에 이은 정동영(鄭東泳) 대통령 특사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6.17 면담’을 지켜본 뒤 북한을 ‘움직이는’ 변수로서 한국의 역할을 의미있게 평가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다음은 그동안 한국 정부가 미국의 대북 군사공격 반대에 초점을 맞추고 북한의 모든 핵폐기에는 소극적인 게 아니냐는 불만을 미국은 갖고 있었으나, 이번 중대제안에는 북핵 폐기에 대한 한국의 단호한 입장이 담긴 점을 평가했다는 것이다.
중대제안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구체적인 대북 전력공급 시기를 핵폐기가 이행되는 시점이라고 못박고 있다.
세번째로 미 행정부는 대북 전력지원 방식이 경수로 사업과 비교할 때 ‘공정기간’이 짧아 빠르게 진전시킬 수 있고 비용이 적다는 점에도 후한 점수를 주고 있는것으로 전해졌다.
2년째 중단된 상태인 경수로 건설의 경우 당장 재개돼도 10년의 공기가 필요한 데 비해 전력지원은 3년이내에 가능하며, 경수로 사업은 완공까지 우리 정부가 24억달러를 추가로 부담해야 하지만 전력지원 비용은 이보다 적다는 판단에서다.
부시 행정부는 끝으로 대북 전력지원이 성사되면 한국의 대북 투자효과도 있을 뿐아니라, 한국 경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긍정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최근 몇년 사이 급격히 불어난 중국의 대(對) 북한투자로 의존도가 심해지자 이를 남북교류 활성화로 분산시켜 중국의 영향력을 낮춰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을 지키려는 속내도 깔려 있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미 행정부가 중대제안에 화답한데는 보다 근본적인 ‘까닭’이 있다는 견해를 비치고 있다.
경수로 건설은 1994년 제네바합의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당시 합의주체로서 사업 책임을 진 미국으로서는 북핵 위기로 공사가 2년여 중단된데 대해 큰 부담을 가져왔으나, 중대제안으로 모양새 좋게 이에 대한 ‘책임 회피’를 할 수 있게 돼 흔쾌히 수용한 것 아니냐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