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北 테러지원국 해제’ 적극의지 주목

“미국의 적극적인 대북 협상의지가 단연 돋보였다.”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4일 오전 아태경제협력체(APEC) 회담 참가차 호주 시드니에 도착하자마자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과 면담했다.

지난 1~2일 제네바에서 북한과 관계정상화 실무그룹회의를 마친 뒤 가진 첫 외교일정이었다. 그만큼 제네바 합의 내용을 놓고 한.미 양국이 긴밀히 협의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면담에서 힐 차관보는 이른바 ‘제네바 합의’ 내용을 자세히 설명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북한이 전날 제네바 합의 내용을 대외적으로 알린 터여서 힐 차관보의 반응이 북핵 외교가의 큰 관심사안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북한측이 제네바 회의에서 연말까지 핵 프로그램 완전신고와 불능화 의지를 분명히 표시했다는 점과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 일을) 이행할 지에 대해 북측과 논의했다는 점을 분명히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그러면서 이에 상응하는 미국의 조치도 충분히 준비돼있음을 과시했다. 힐 차관보는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와 대적성국 교역법 적용 해제문제에 대해 지난 2월부터 미국이 내부적으로 검토작업을 해왔음을 송 장관에게 설명했다.

지난 2월은 북핵 2.13합의가 이뤄진 시기다. 따라서 미국은 2.13합의가 도출된 직후부터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삭제하는 문제를 심층적으로 검토해왔으며 그런 점을 이번 제네바 회의에서 북한측에 확실하게 전달한 것으로 관측된다.

제네바 합의에 앞서 지난달 31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아.태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핵 문제의 임기내 해결’에 자신감을 보이면서 자신은 이미 선택했다며 김정일 북한 위원장의 결단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공개한 것도 미국 수뇌부가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확실히 취할 경우 ‘과감한 딜’에 나설 수 있음을 과시한 것으로 읽힌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전날 ‘연내 핵시설 불능화’ 합의를 강조하면서 “그에 따라 미국은 테러지원국명단에서 우리나라를 삭제하고 적성국 무역법에 따르는 제재를 전면 해제하는 것과 같은 정치경제적 보상조치를 취하기로 하였다”고 밝힌 것은 미국의 확실한 언질이 없이는 불가능한 내용이다.

현지 소식통은 “힐 차관보의 이날 설명은 북한측이 비핵화 조치를 분명하게 하면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시점과 관련된 입장도 곧 분명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적극적인 협상의지에 놀란 일본 측을 배려하기 위해 이른바 ‘납치문제’를 테러지원국 해제 등에 연계해놓고 있지만 미국의 수뇌부의 의지는 이제 분명해 보인다.

이 소식통은 “오는 5~6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리는 북.일 관계정상화 실무그룹회의에서도 과거와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면서 “북한과 미국이 적극적인 의지를 과시하고 있는 만큼 6자회담에서 비핵화 현안과 관련된 진전이 기대되는 국면”이라고 말했다.

특히 북한이 올해 안에 모든 핵시설을 불능화하고 핵프로그램을 신고하는 일정을 지킨다면 부시 행정부에는 중요한 외교적 승리가 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NYT)가 3일 보도하는 등 미국내 여론도 미국 정부 고위인사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있다는 게 외교가의 중평이다.

힐 차관보의 자신감은 제네바 회의에 대한 평가에서도 묻어난다. 그는 제네바 회의가 지금까지 진행해온 어떠한 북.미 양자회담보다 분위기가 좋았고 생산적이었다고 송 장관에게 설명했다.

두 사람은 제네바 합의를 바탕으로 향후 6자회담의 추진일정에 대해서도 협의하는 등 과거 ‘6자회담 협상 파트너’로서의 돈독한 우정을 과시하기도 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