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특사 방북‥`독’인가 `약’인가

미국의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부시 행정부 시절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에 이어 7년만에 내달 8일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방북할 예정이어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관심이 모아진다.


이번 보즈워스 특별대표의 방북과 켈리 차관보의 방북은 우선 미국 대통령의 특사 자격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특히 대통령 특사라는 타이틀에서 느낄 수 있듯이 북미 관계가 나빠진 `최대 고비’의 시점에 북한을 찾아간다는 것도 비슷한 대목이다.


켈리 특사의 방북은 부시 대통령이 2002년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한데 이어 `핵태세 검토보고서’에서 북한에 대한 핵선제공격까지 명문화해 북미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던 상황에서 이뤄졌다.


이번 보즈워스의 방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4월 장거리 로켓 발사와 6월 핵실험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제재결의안이 채택돼 북미 관계가 크게 경색된 형국에서 돌파구를 모색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즈워스 특별대표의 방북이 7년 전과 다른 점도 적지 않다.


우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 및 안보 환경이 2002년과 크게 다르다.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됐던 2002년 4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방북한 임동원 당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직접 만나 남북교류 등 다양한 합의를 이끌어 냈다.


같은 해 9월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일본 총리가 방북해 김 위원장과 회담을 갖고 국교정상화 교섭을 벌이는 동시에 일본인 납치사건 사과 및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냈다.


큰 틀에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정세가 잘 풀려가는 국면이었던 셈이다.


반면 보즈워스 특별대표의 방북을 앞둔 현재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이어지는 가운데 남한 정부가 남북 당국간 회담과 교류협력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일본도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대북압박’ 기조를 견지하고 있다.


2002년 당시 북한의 고립이 주로 한미 양국의 영향력 안에서 파생된 구도였다면, 현재는 얼어붙은 북미관계가 국제사회 전반의 대북 압박기조와 맞물려 돌아가는데다 남한 정부마저 소원한 스탠스를 유지해 북한의 고립이 극도로 심화된 상황인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의 차이는 실제 행동에서도 분명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우선 보즈워스의 이번 방북은 북한의 초청에 의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2002년 6월 하순 미국의 선(先)제의에 의해 이뤄졌던 켈리 차관보의 그것과 다르다.


최근 수세에 몰린 북한은 8월초 억류 여기자 석방을 위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시점을 전후해 보즈워스 특별대표와 성 김 미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가 9월중 북한을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2002년에는 원치 않았던 한반도 해빙무드 속에서 미국측이 6월 박길연 당시 유엔 주재 대사를 통해 특사 방북 의사를 북측에 전달했다.


여기에다 서해상에서 발생한 교전이 특사 방북에 미친 영향에서도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2002년 북미 양측은 7월중 미국의 특사를 평양에 파견하기로 합의했지만 6월29일 제2차 연평해전이 발생해 남측이 적잖은 피해를 입자 미국은 특사 방북 논의를 중단했다.


결국 제임스 켈리 차관보는 당초 합의보다 3개월 뒤인 10월에야 북한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청해전’에도 불구하고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특사 파견을 강행함으로써 한반도 문제의 `대화를 통한 해결’ 원칙을 재확인했다.


또 2002년 켈리의 방북이 `최악의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특히 이번 보즈워스 방북 결과에 시선이 쏠려 있다.


실제로 2002년 당시에는 켈리 차관보의 방북으로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문제가 불거지면서 북미관계가 최악의 국면으로 접어들고 남북관계도 크게 악화됐었다.


반면 1994년 북핵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클린턴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방북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구형 원자로 폐기와 남북정상회담 합의 등을 이끌어냄으로써 위기를 진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은 정부 관료가 아닌 전직 대통령의 방북을 통한 정치적 해결책의 모색이었다는 점에서 이후의 특사 방북과 단순히 비교하기 어렵다.


또 1999년 5월 윌리엄 페리 당시 대북정책조정관이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방문하기도 했었지만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기조를 검토하기 위한 방북이었다는 점에서 2002년이나 이번의 특사 방북과는 거리가 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