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측 통역관이 밝힌 `北 HEU 프로그램’ 진상

“미국은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에 대한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미국 국무부 통역관으로 활동해온 김동현(69)씨는 20일(워싱턴 현지시각) 제임스 켈리 특사가 2002년 10월 방북 당시 HEU 프로그램에 관해 결정적인 증거를 내놓지 않았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김씨에 따르면 제임스 켈리 당시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자 북한이 시인한 것은 아니며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도 ’HEU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는 명시적 표현을 쓰지 않았다.

미국이 2002년 10월 17일 켈리 차관보의 평양 방문 직후 “북한이 비밀 핵무기 계획을 시인했다”고 발표, 제2차 핵위기가 촉발된 지 2년 8개월만에 나온 ’뒤늦은 증언’이다.

켈리 차관보는 당시 북한의 수입 내역서와 송장(送狀) 등 증거자료를 들이밀며 집요하게 추궁한 끝에 강 부상으로부터 “물론 우리는 핵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그것보다 더 강력한 것도 있다”는 말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미 행정부는 지금껏 북한측에 제시한 ’결정적 증거’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켈리 차관보는 같은 해 11월 워싱턴 기자회견장에서 ’당신이 강 부상에게 제시한 핵개발의 증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그저 당신들(북)이 그 일(핵개발)을 하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것은 많은 국제합의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라고 말했다”고 답했을 뿐이다.

북한 역시 켈리 차관보가 어떠한 증거를 제시했는지 공개하지 않았으며 핵개발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그해 10월 25일 담화를 통해 “(켈리 차관보에게)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핵무기는 물론 그보다 더한 것도 가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명백히 말해줬다”고 전했다.

대변인은 또 “미국과 적대관계를 근원적으로 털어버리고 평등한 입장에서 현안을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으나 부시 행정부의 적대적 기도가 최절정에 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며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이렇듯 ’결정적 증거’의 진상은 베일에 가려진 채 이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대북 중유지원 중단, 북한의 핵동결 해제와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탈퇴 선언,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북핵 안보리 보고 결의 등이 잇따르면서 한반도 핵위기가 재연됐다.

결국 김씨의 이날 발언은 뒤늦게나마 미국이 제시했다는 증거의 실체를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한편 20년 넘게 미 국무부 통역관으로 활동한 김씨는 2001년 3월 김대중 대통령과 조지 부시 대통령의 워싱턴 정상회담과 지난해 10월 콜린 파월 국무장관 방한 당시 부분적인 오역으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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