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조사단 ‘모니터링’ 조건 협의시 이것만 명심해라

최근 북한정권과 관련돼 진행되고 있는 미 국무부의 공식적 임무(mission)를 보노라면 오바마 행정부가 대규모의 대북식량지원을 준비하는 것 아닌가는 짐작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동시에 이번 임무를 통해 과거의 실수로부터 뭔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도 제기된다.


미국 북한인권특사 로버트 킹은 현재 미국국제개발처(USAID) 해외재난지원국 존 브라우스(Brause) 부국장과 함께 평양을 여행 중이다. 스티븐 해거드 박사와 story K의 이종철 씨는 지난 칼럼에서 대북식량지원 제공의 타당성에 대한 토론을 진행한 바 있다. 나는 이번 칼럼에서 킹 특사와 브라우스 부국장이 아마도 고군분투하고 있을 모니터링 이슈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북한 정권은 전세계적으로 실행되고 있는 인도주의적 지원의 규범을 지킬 의사를 전혀 보여주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기술적인 사항을 더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자원이 한정되어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최대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고, 또 해당 정권이 기부자의 의도를 뒤엎을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확약이 있는 곳에 지원을 제공하려고 한다.


하지만 수혜당국의 협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지원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하다. 즉, 엘리트 계층이 소비하기에는 부적합한 형식의 지원을 제공한다거나, 전용을 제한하기 위해 현지에서 바로 요리를 하는 종류를 제공하거나,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는 피해지역 현장에 직접 보냄으로써 설령 지원식량이 시장으로 전용된다 하더라도 이는 결과적으로 식량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게 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 등을 들 수 있다.


다른 방법들로는 지원식량이 들어가는 장소에서 식량을 경매에 붙이는 방법도 있다. 그럼으로써 일단 전용하고자 하는 당국이 아니라 지원해주는 측이 이권을 가지고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실제로 피해를 입어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영양상태를 조사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영양상태에 따라 취약층에 속하지 않는다고 간주되면 프로그램을 중단하는 것이다.


1995년 초기 미국의 대북지원을 대부분 담당한 세계식량계획(WFP)는 일련의 접근문제와 관련 북측와 협의를 했다. 그러나 협의는 항상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북측은 한국어 사용자(모니터 요원)들을 반대했고, 수혜자에 대한 접촉을 제한했으며, 병원이나 학교 등 수혜기관의 완전한 목록 제공도 거부하는 등 모니터링을 방해해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WFP는 점차적으로 더 나은 조건을 합의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은 WFP가 식량제공에 있어서의 원칙에 대한 합의를 도출한 2005년에 정점에 이르렀다.


– 세대당 식량정보: 4개월마다 WFP가 기본적인 세대 조사를 착수하고, 지역간부들이나 농장원, 공장기업소 간부들을 인터뷰하거나 집중그룹과 토론을 주최하고 또 시찰을 진행한다.
– 분배 모니터링: WFP는 양정사업소를 모니터링하거나, 지원식량을 받는 사람들과의 인터뷰, 시설물 (군단위 식량저장소, WFP물자로 식료품을 생산하는 공장이라던가, 식량을 직접 받는 기관 등)방문을 통해 모니터링을 확대한다.
– 배급카드: 모든 WFP수혜자들은 WFP가 디자인하고 인쇄한 배급카드를 제공받아 배급시마다 WFP의 체크를 받는 방법.
– 원재료 추적: WFP스텝들을 실질적으로 항구에서부터 지역 식량창고까지 그리고 각 군당 3개에서 6개 정도 단위로 식량배급소를 실질적으로 지원식량을 따라 이동할 수 있게 허락하는 것이다. 이는 화물운송장 번호에 따라 물자를 추적하는 방식으로 결과적으로 항구에서 배급에 이르기까지 지원식량 자루를 추적하는 전자시스템을 이용하는 방식을 위한 길을 열어주는 것일 수 있다. 이런 방식은 한층 더 통합되고 일관성 있는 시스템을 실행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남한과 중국의 관대한 지원과 풍작으로 인해 2005년 합의는 실행되지 않았다. 이후 북한은  WFP와 NGO들을 내쫓을 것이라는 위협까지 했다.


하지만 어쨌든 이러한 합의들은 2008년 6월에 이뤄진 협의를 이끄는 밑바탕이 됐다. 이러한 협상들은 북한 내에서는 분열을 일으켰다. 북한에서 NGO를 상대하는 단체(counterpart organization)는 조미민간교류협회(KAPES)였고, WFP를 상대하는 단체는 국가협력위원회(NCC)이다.


미국은 주요 지원국이다. 그래서 WFP를 비롯해 미국 협력 NGO들에게까지 자신의 기여도를 확장시키고자 하는 열의를 보였다. 미국 정부는 NGO에게 자신들의 의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NGO입장에서는 북한 프로그램에 비교적 협조적인 KAPES를 상대하고 있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 또한 현실적으로 KAPES와 협상했다. KAPES는 NCC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WFP-NCC 프로그램으로까지 영역을 확대했다. 그러나 NCC는 한국어 사용 부문에 대한 합의 조건을 지키는 것을 결국 거부했다.


비록 내용에 있어서는 각기 달랐지만, WFP의 이러한 운영은 결과적으로 북측 담당자들에게 정확한 합의이행이 반드시 강제적인 것은 아니라는 직간접적인 신호로 전달됐다. 어쩌면 이는 지속적으로 북한에 접근하려고 하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다. 지원자(미국)의 견해에서 보자면, WFP 프로그램과 관련한 문제점은 실제 운영 부문에 있어서 장애로 나타났고, 급기야 2008년 말의 지원 중단으로까지 이어졌다. NGO차원의 프로그램은 2009년 초까지 계속됐다.


지난달 WFP는 2008년의 합의서와 유사한 이해각서를 보내며 지원을 되살려보고자 했다. 하지만 북한이 이번에는 합의서를 지킬 것 같다고 믿을 이유는 없다. 일부 미 정계에서는 WFP와 NGO를 대북지원에서 배제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차라리 후원자들의 지시사항을 더 확실시 수행할 수 있는 개인 하도급을 통해 지원하는 것에 한 표를 던지고 있다.


이는 과거 미국이 발표했던 임무(mission)로 되돌아가는 측면이 있다. 킹 특사와 브라우스는 정치적으로 어쩌면 과거의 합의서보다 더 나을 것 없으나, 실질적 실행에 있어서 향상될 것이라는 기대가 담긴 또 하나의 합의서를 가지고 돌아와야 될 것이다.


남한이 공식적 지원을 해야 하는지는 분명히 남한 당국이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하지만 남한의 참여는 어떤 면으로는 미국의 노력에 한층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남한이 WFP를 통해서건 다른 메커니즘을 통해서건 주요 지원국이 된다면, 모니터링에 있어서 북한이 한국어 사용자를 거부하기는 매우 힘들게 될 것이다. 한국어로 의사소통하는 능력은 북한에 신뢰할 만한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적용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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