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입양 한국계, 암투병속 北어린이 돕기

반세기전 미국인에게 입양됐던 한국계 미국인이 암 투병 속에서 전 재산을 털어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를 돕고 있다고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11일 소개했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한상만(64)씨는 자신의 한국 성과 미국인 양아버지인 고 아더 슈나이더씨의 성을 딴 ‘한-슈나이더 국제어린이재단’을 설립,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을 도우면서 특히 북한 어린이 돕기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고 VOA는 전했다.

한씨는 지원물자 분배의 모니터링 문제로 북한 당국과 협의가 어려움을 겪는 바람에 지난 1월 처음으로 북한의 사리원과 평성 등 고아원 어린이 800-950명에게 나눠줄 포장음식 14만여개와 겨울 점퍼 1천벌을 보냈다.

그가 굶주림에 허덕이는 북녘 어린이들의 실상을 처음 접한 것은 지난 1995년. 당시 사업차 북한에 갔다가 기근 상황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고 북한 어린이들을 도와야 하겠다고 결심했지만 “먹고 사는 데 바빠”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몇해 전 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던 중 “가진 게 별로 있지도 않지만 있는 것을 다 저를 위해서 써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재산을 다 정리해 재단에 넣었다.

북한에 보낸 포장음식엔 쌀과 콩 등 식물성 단백질, 비타님, 무기질이 혼합된 영양제 등이 담겨 있으며, 특히 미네소타 주에 있는 ‘굶주리는 어린이 돕기’라는 단체 관계자들이 14만개 전부를 일일이 손으로 정성스레 포장했다.

VOA는 한씨의 재단이 양아버지를 기리기 위한 것이라며 그의 인생 역정을 소개했다.

한씨와 양아버지의 만남은 양아버지가 1954년 서울대 재건 사업 총책임자로 한국에 오는 바람에 이뤄질 수 있었다.

6.25전쟁 통에 부모를 잃은 한씨는 일자리를 얻으려 무작정 서울대병원장실을 찾았으나 문전박대를 당하고 발길을 돌리다 마침 병원장을 만나러 와 있던 슈나이더씨를 만나 인생이 극적으로 바뀌었다.

한씨와 의사소통을 위해 한국말까지 배울 정도로 한씨에게 정을 쏟았던 슈나이더씨는 1961년 미국으로 돌아갈 때 당시 16살이던 한씨를 데리고 갔다. 미혼이었던 슈나이더씨가 한씨를 입양하는 데는 미네소타주 출신 연방의원들이 힘을 모았다.

한-슈나이더 재단은 5월초엔 의료진 20여 명을 열흘 정도 일정으로 북한에 보낼 계획이다.

한씨는 항암치료를 받고 있어 많이 쇠약해진 상태이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의료진과 함께 북한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고 VOA는 전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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