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미사일 발사 준비로 인해 한반도 주변이 초긴장 상태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국방장관, 북미 방공 사령관, 태평양 사령관 등의 언급을 통해 북한이 미사일 발사 할 경우 요격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대포동 미사일 위기가 시작된 이후 미국은 북한이 발사하려는 로켓을 미사일이라고도 말하고 인공위성이라고도 말했다. 그러나 최근 게이츠 미 국방 장관은 Fox News TV 와의 인터뷰(3월29일)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요격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미국측의 혼란스런 언급은 북한에 대한 일관된 정책의 부재라고 분석할 수도 있지만, 북한에게 미국의 의도를 정확히 알리지 않으려는 정보 전술의 일환일 수도 있다. 북한도 미국의 의도가 무엇인지 대단히 혼란스러울 것이다.
요격 계획이 없다고 언급한 바로 그 날, 부산항에 정박해 있던 미국의 이지스함 두 척은 동해를 향해 출항했고, 미사일 발사 탐지용 RC-135 정찰기들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기지 부근의 상공을 선회 비행하고 있다. 줄곧 북한 미사일을 요격해야 한다고 주장한 일본 정부는 3월 27일 자위대에 대해 북한 미사일 요격 명령을 공식으로 발령했다. 북한 역시 일본, 미국에 대해 강경한 어조로 경고하고 있다. 미국 정찰기가 근접할 경우 공격해서 추락시키겠다고 위협하며 Mig-23, Mig-29 전투기 등을 출격시켰다.
그렇다면 북한이 실험 발사하려는 미사일인지 인공위성인지를 쏘지 못하게 하는 미국의 의도는 무엇이며 또 기어코 발사하려는 북한의 의도는 무엇인가?
우선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하려는 시도는 무기체계 개발 과정에서 나타나는 통상적인 일이다. 핵폭탄을 보유한 국가는 반드시 미사일을 보유해야 한다. 핵무기와 미사일은 마치 실과 바늘의 관계와 같다. 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어야 비로소 ‘핵무기 체계’ (Nuclear Weapons System) 가 갖추어지는 것이다. 핵탄두만 있거나 미사일만 있다면 그것 자체로서는 적을 위협할 수 있는 진정한 무기가 되지 못한다.
이미 북한은 한국이나 일본을 위협하기에는 충분한 ‘핵무기 체계’ 를 갖추고 있다. 한국을 핵폭탄으로 공격하기 위해서라면 북한은 미사일은 물론이지만 낡은 폭격기 IL-28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 특히 미국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미사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Scud-B와 소련제 미사일 Scud를 개량한 화성 5호, 화성 6호 등은 한반도 전체를 사정권 안에 두고 있다.
북한은 일본 전역을 공격할 수 있는 사정거리 1350-1500 Km의 노동미사일도 사실상 개발 완료한 상태다. 2006년의 미사일 발사 실험을 통해 북한은 한국과 일본을 공격하기에 충분한 미사일 능력이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그래서 북한이 이번에 실험 발사하려는 미사일은 그것이 대포동 미사일인지 혹은 북한 말대로 인공위성인지를 따질 필요가 없이 미국을 염두에 둔 것이다.
북한이 원하는 바는 “핵폭탄을 장착한 미사일이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다” 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자신의 핵-미사일이 미국에 도달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는 순간 북한은 대전략상의 염원 하나를 달성하게 될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체계 완성은 미국과 싸우려는 목적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북한이 핵무기를 많이 갖추더라도 미국과 북한 사이에 핵 억지 상황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 핵 억지란 미국과 구소련 수준에서 나타나는 전략 상황이다. 아무리 먼저 공격해 봤자 선제공격의 이점을 살릴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무장한 나라들, 즉 보복능력(Second Strike Capability)을 갖춘 나라들 사이에서만 핵 억지 상황이 나타나며, 핵전쟁이 억제될 수 있는 것이다. 북한과 미국사이에는 전략적, 지리적으로 그런 상황이 성립될 수 없다.
북한은 우선 지리적으로 너무 작은 나라다. 미국이 만약 북한에 대해 선제공격을 가해 온다면 북한은 이를 감당할 도리가 없다. 또한 북한이 미국을 먼저 공격할 수도 없다. 그것은 자살과 같은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미국과의 핵 억지 상황이 아니다.
북한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불과 몇 발의 핵폭탄과 미국에 도달할 수 있는 미사일을 보유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전략 효과는 북한이 남한을 공격했을 때 나타날 것이다.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 개발을 통해 얻으려는 최대의 목적은 이처럼 한반도에 한정되는 것이다.
그동안 미국은 북한이 무력으로 남한을 공격하는 경우, 미국은 적극적으로 남한을 군사 지원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기왕의 계획에 의하면 북한이 남침하는 경우 미국 본토로부터 70만에 달하는 미군이 한반도에 투입되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핵-미사일을 보유하게 되는 날, 미국의 남한에 대한 각종 군사 지원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이 미국을 핵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날, 우선적으로 남한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소위 extended deterrence)은 그 신뢰성이 거의 없어질 것이다. 북한이 남한에 대해 핵공격을 위협할 경우 미국은 자신의 핵폭탄으로 남한을 보호해 줄 수 있을까?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미국이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간주하고 스스로 핵무장의 길을 택한 바 있었다. 미국은 서울을 지키기 위해 시애틀 혹은 샌프란시스코를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을까? 이 질문에 미국이 망설인다면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은 이미 찢어진 우산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북한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포동 미사일을 보유하려고 저토록 애쓰는 이유는 미국과의 일전불사(一戰不辭)를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북한이 의도하는 바는, 앞으로 북한이 한반도 문제를 자기방식으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미국의 개입을 가능한 배제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의미하는 한반도 문제 해결이란 북한이 통일 한반도의 주역이 되는 것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또한 대한민국과 달리 북한은 언제라도 무력에 의한 통일이라는 방안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북한은 미국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통일은 북한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이 한반도에 개입하기 아주 곤란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북한이 생각하는 통일을 위한 최선의 조건인 것이다.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 발사에 성공해서 미국 본토를 핵공격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과시할 수 있다면 북한은 한반도 전쟁 발발 시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을 진짜 곤란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대포동 미사일을 완성하고 대포동 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온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상상하기조차 싫은 일이다. 그러나 전략이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일이다. 북한이 미국까지 공격할 수 있는 핵무기 체계를 갖추는 날 한반도의 전략 구도는 완전히 바뀔 것이다. 그때 우리는 기왕의 방식으로는 더이상 대한민국의 안보를 보장받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이제 분명하다. 우리가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은 북한의 미사일 실험을 막는 일이다. 실험발사와 실험발사에서의 성공이 없는 한, 북한은 자신의 미사일이 미국까지 간다며 미국을 위협할 수 없을 것이며 한반도의 전략 구도는 그대로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반도의 전략 구도가 대폭적으로 변화하는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할지도 모를 상황에 당면하고 있다. 만약 북한이 미사일 발사 실험을 강행하고, 북한의 미사일이 미국까지 날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면 그때 우리는 기왕의 발상을 통째로 바꾸는 완전히 새로운 국가안보 전략을 구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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