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망명 탈락’ 보위부 출신을 어떻게 볼 것인가?

지난 5월초 중국 선양(瀋陽) 주재 한국총영사관을 이탈, 미국 영사관 담을 넘어간 탈북자 4명중 3명이 24일 미국행이 결정됐다.

당초 4명이 진입했으나, 그 가운데 1명은 보위부 출신이라는 ‘과거 경력’ 때문에 미국행이 거부되고 한국으로 들어올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자 입장에서는 미국행이든 한국행이든 감사할 일이지만, 보위부 출신으로 정치범 수용소 경비를 지낸 그의 경력 때문에 미국행이 거부된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미 정부가 2004년 북한인권법 통과 이후 탈북자들을 선별해 수용한다는 방침이기 때문에 주민탄압 기구인 보위부 출신이라는 점이 미국행을 어렵게 했을 수 있다.

물론 미국의 입장은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의 사회적, 정치적 행위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중요시하는 서구의 전통을 볼 때, 명백한 주민탄압기구인 보위부 출신까지 미국이 수용하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나치에 명백히 부역한 자들의 망명을 수용하지 않은 것처럼, 인권을 탄압한 자들까지 포용하는 무원칙을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개인의 사회적 행위에 개인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 하의 북한 사회는 개인의 사회적 책임을 칼로 두부 자르듯 가를 수 없는 부분이 훨씬 많다. 모든 주민들이 ‘수령 결사옹위’를 해야 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나에게 충성하는 것이 곧 조국에 충성하는 것”이라며 자신을 ‘조국’으로 부르게 하고 있다. 따라서 만약 그 보위부 출신이 자신의 행위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당국의 지시를 거부한다면 그 자신이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어야 한다.

그들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는 것이다.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영식 교육의 테두리 안에서 눈만 뜨면 충성교양과 계급독재에 물들어 속아 충성해왔다. 또 그 사회에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충성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중간 권력계층, 자기 미래에 좌불안석

지금 김정일 정권을 지탱하고 있는 권력계층은 크게 잡아 주민의 약 20% 정도다. 이들은 김정일과 당, 주민들을 묶어 놓는 중간 단위들이다. 그들에 의해 북한이 지금 지탱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아무리 ‘장군님'(김정일)에 대한 충성과 체제사수 정신이 투철한 사람들이라 해도 약점을 갖고 있다. 현 권력층은 대체로 부모들의 계급적 후광을 받아 기용된 사람들이다. 이들도 세대가 바뀌면서 계급의식에서 변화가 생겼고, 현 북한체제의 미래를 낙관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그들도 말 한마디 잘못하면 자기의 지위에서 쫓겨나게 된다. 한번 정치적 굴곡을 겪게 되면 이들은 오히려 당국에 불만을 더 많이 가진다. 김정일 체제에 대해 잘 알고 있어 일반주민들보다 변화가 더 쉬운 면도 있는 것이다.

이번 선양 미 영사관 탈북자 처리과정을 북한 내에서 관심 있게 지켜본 사람들은 아마도 이들 권력층일 것이다. 이들 중에는 바로 자신의 ‘가까운 미래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의 선별 수용에 실망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김정일은 권력계층에게 “우리식 사회주의를 버리면 우리가 먼저 처형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도 김정일에게 속아 살아온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에게도 지금까지 속아 살아온 과거를 뉘우치고 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더욱이 이들은 구소련과 동구가 무너지고, 90년대 중반 대아사 기간을 거치며 체제에 대한 우려와 자기 미래에 큰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가장 우려하는 문제는 북한이 민주화될 경우, 자신들의 운명이 어떻게 처리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금 북한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김정일 수령독재 정권을 개혁개방 정부로 바꾸어 주는 것이다. 그것이 북한 민주화의 제1차 선결 조건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중간 권력계층에 변화를 불러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미국의 선별 망명수용 정책은 나름의 원칙과 미국식 정치철학의 배경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 하에서 북한주민이 처한 현실을 더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hyj@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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