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리비아 외교관계 복원과 북핵 파장

미국이 16일 리비아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고 25년여만에 외교관계를 전면 복원한 것은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여러 의미를 함축한 상징적 조치로 보인다.

무엇보다 조지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 이란 핵문제의 해법을 못찾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조치를 통해 돌파구를 모색하려는 원려(遠慮)가 담긴데 아니냐는 해석이 많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성명에서 리비아가 2003년 12월 이후 미국과의 합의를 통해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폐기했음을 지적하면서 리비아가 북한과 이란에 ’중요한 모델’이라고 강조한 데서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실제 미국은 북핵 문제와 관련해 그간 ’리비아식 해법’을 거론하며 북한의 선(先) 핵폐기 결정을 촉구해 왔다.

물론 부시 행정부의 이번 조치에 대해 유가 폭등으로 안정적 석유 공급이 절실해진 상황에서 리비아가 주요 산유국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것이란 관측을 제기하고 있으나 경제적 원인보다는 정치적 이유에서 원인을 찾는 시각이 우세하다.

사실 리비아는 지난 4월 미 국무부가 연례보고서를 발표했을 때 이란과 북한, 쿠바, 시리아, 수단 등과 함께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됨으로써 적어도 당분간은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빠지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았다.

워싱턴 주재 리비아 수석연락관인 알리 아우얄리가 리비아가 미국에 적극 협조했음에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지 않은데 대해 “속았다”는 생각이 든다며 크게 반발함으로써 이런 분석을 뒷받침했다.

그럼에도 미국이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한 지 불과 한달여만에 리비아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한 것은 리비아 자체보다는 오히려 이란과 북한을 겨냥한 정치적제스처라는 분석이 만만찮다.

논란을 겪고 있는 양국의 핵프로그램과 관련, ’리비아식 모델’을 따를 경우 미국의 이번 조치와 동일한 과정을 거쳐 미국과 외교관계를 정식 체결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는 해석이다.

다시 말해 이날 라이스가 언급한 것처럼, 이란과 북한이 직접 핵포기에 나설 경우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양국에 미국대사관 개설→외교관계 전면정상화의 수순을 밟을 것임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미국과 리비아는 지난 2004년 2월 트리폴리와 워싱턴에 각각 이익대표부를 개설했고, 그해 6월 이를 연락사무소로 격상하며 전면 외교관계 복원의 길을 걸어왔다.

실제 라이스가 이날 성명에서 “2003년이 리비아 국민들에게 전환점이 됐던 것처럼 2006년은 북한과 이란 국민들에게도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함으로써 미국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 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앞서 리비아는 미국이 이라크의 WMD 프로그램을 명분삼아 지난 2003년 이라크 침공을 단행하자 후속 공격목표가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그 해 12월 자국 핵프로그램을 자진 폐기키로 결정, ’리비아식 해법’의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미국은 매년 국가별 테러리즘 보고서를 발표하고 국제적인 테러행위에 직접 가담했거나 이를 지원, 방조한 혐의가 있는 나라를 테러지원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지난 1987년 11월 김현희(마유미)가 연루된 대한항공(KAL)기 폭파사건으로 이듬해 1월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 처음 올랐다.

그 후 북한은 테러지원 행위를 한 적이 없지만 지난 1970년 일본 항공기를 납치한 적군파 등 테러리스트를 보호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빠지지 못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1979년 이슬람 혁명 후 이란 대학생들의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 점거농성 사건으로 이란과 외교관계를 단절해 왔다.

미국은 이란을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 지난 95년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대 이란 금수조치를 취했고, 96년에는 이란의 석유ㆍ가스 개발사업에 투자하는 기업을 제재하는 내용의 경제제재법까지 발효했다.

테러지원국 지정해제는 미 행정부의 재량에 달려있지만, 앞서 대통령이 의회에 해당국가가 현재 국제테러를 지원하지 않고 향후에도 지원하지 않으며, 최근 6개월간 국제테러를 지원하지 않았음을 입증해야 한다.

아무튼 인권과 위폐 카드로 북한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가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권 붕괴이후 ’악의 축’의 마지막 국가로 남아있는 북한과 이란측에 외교적 해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 측면이 적지 않다.

북한 김정일(金正日) 정권에 대해선 지난해 베이징에서 채택한 9.19 공동성명에서 약속한 대로 WMD 프로그램의 완전한 해체를 선언하고 나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또한 이란에 대해선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최근 부시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이란 핵문제에 대한 “새 해법”을 찾아볼 것을 제안한 것에 대한 우회적 답변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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