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중문화에선 `김정일’이 최고 악당

미국의 영화, TV, 비디오 게임 등 대중문화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을 제치고 최고의 `악당’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지가 1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최근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나치, 일본, 소련, 콜롬비아 마약단에 이어 북한 사람들이 이슬람 과격분자들과 함께 악당 명단에 합류했다.

`패시파이어’라는 최신 가족영화에선 주인공 빈 디젤은 5명의 거친 아이들을 보살피며 북한 스파이부부에 맞서는 미 해군 특수요원으로 등장했다.

홍콩 영화 ‘랩터스의 특수경찰팀(Dragon Squad)’에서는 북한 요원이 인터폴팀을 공격하는 장면이 나오고 `타이드 오브 워’에선 북한 잠수함이 미해군 잠수함에 몰래 접근, 도청하려는 상황이 연출된다.

오랫동안 인기를 끌었던 TV 시리즈물 `사우스 파크’의 제작진은 최근 사담 후세인을 퇴역시키고 대신 김 위원장을 악당으로 묘사한 인형극 영화 ‘팀 아메리카:세계 경찰(Team America: World Police)’을 내놓았다.

여기에서 김정일 인형은 통역을 총으로 쏴 죽이고 한스 블릭스 유엔 무기사찰단장을 상어 수조에 먹이로 던져준 뒤 자신의 궁에서 “난 외로워”라고 읊조리며 우울해한다.

또 현실 세계에서 미국의 정보분석가들은 북한 핵시설을 위성 관측하는 것에 그치지만 루카스아츠사(社)의 비디오게임 `머서너리즈’ 게이머들은 붉은색 한글로 `영변 핵연료 재처리장’이라고 적힌 회색 건물을 직접 폭파시킬 수 있다.

미국 정부가 북한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심리학자들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를 `악(evil)’으로 규정, 사실상 이같은 악마화(demonization)를 공인한 셈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메릴랜드대학 국제정책경향 프로그램의 팀장인 스티븐 컬은 “한 지도자가 다른 국가나 다른 지도자를 악으로 규정했을 때 이는 전쟁을 준비하거나 악마화작업을 준비하라는 신호”라고 말했다.

그는 “역사적으로도 지도자들은 악마화 절차를 거쳐 적대국을 위협하려 해왔고 이같은 행위는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문화적 모멘텀을 조성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컬은 최근 부시 대통령의 연설을 종합 분석한 결과 그는 `김정일’이라는 이름을 12차례나 거론하며 비난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인들로선 부시 대통령이 전 세계 TV를 통해 김 위원장을 `폭군’이라고 지칭했던 장면이 매우 선명하게 남아있는 듯하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장은 “부시 행정부는 적을 필요로 하고 있다”며 “테러리즘 및 대량살상무기와 맞서는 정책을 위해서는 `악당’을 필요로 한다”고 지적했다.

여론조사 결과도 김 위원장이 이미 미국 일반가정에서도 일상적 이름이 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퍼레이드지(誌)는 김 위원장을 `세계 최악의 독재자 10인’ 중에서 1위로 선정했고 지난 3월 갤럽의 여론조사도 미국인이 가장 큰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나라로 북한이 이란을 제친 것으로 나타났다.

부정적 이미지 일색인 미국의 대북 시각과는 달리 한국인들의 입장은 사뭇 다르다.

컬은 “한국인은 북한 사람을 같은 문화를 공유한 동포로, 또 한 인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한국은 예전과 달리 북한을 악마화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한국인들은 지난 2003년 북한 군사요원이 대량살상무기를 얻으려 하는 내용의 007 영화 `다이 어나더 데이’ 상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