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게임에 나치·소련군 대신 북한군 등장

“북한 지도자들이 국방예산을 삭감하자, ’정 대장’이라는 불리는 군 장성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이어 남한을 재래식 및 핵 무기로 위협한다.”

세계적 게임업체인 유비소프트가 X박스 게임기용으로 제작한 군사 액션게임 ’고스트리콘2(Ghost Recon 2)’에 비친 북한의 모습이다.

최근 미국의 게임업체들이 나치나 구 소련군 대신 북한군을 사악한 적으로 설정한 게임들을 잇따라 출시하고 있지만 한국의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이런 게임에 대해 등급보류 판정을 내리고 있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이 9일 보도했다.

이는 미국 게임업자들이 북한을 적으로 간주하고 있는 반면 한국의 영상물등급위원회는 북한을 ’말 안 듣는 사촌’(Wayward Cousin) 정도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영상물등급위원회는 고스트리콘2 외에 ’스플린터 셀 혼돈이론(Splinter Cell Chaos Theory)’, ’머시너리즈(Mercenaries)’ 등 3개의 게임에 대해 국내 판매를 금지했다.

이 신문은 이처럼 한국에서 북한을 악마처럼 묘사하는 게임을 검열하려는 노력은 세계에서 가장 인터넷망이 발달한 한국 사회에서 온라인 게임이 얼마나 강력한 문화적 영향력을 가지게 됐는지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역사를 전공하는 대학생 임성애(21)씨는 “한국인들 특히 젊은이들은 북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며 “비디오 게임에 북한에 대한 나쁜 이미지가 나온다면 그들은 그같은 이미지만 보고 균형잡히지 못한 시각을 갖게 돼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학생인 임부길(21)씨는 “한국에서 그같은 게임들은 요즘 인기를 끌 수 없을 것”이라며 “북한은 더 이상 우리의 주된 적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한국전쟁 이후 40년 간 한국인들은 북한을 적으로 간주해왔으며 그때처럼 군부가 정치.사회를 지배하던 시절이라면 이같은 ’안티 북한’ 게임들이 무료로 보급됐을 것이라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신문은 그러나 현재는 상황이 바뀌어 ’웰컴 투 동막골’처럼 남북한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는 내용의 영화가 인기를 누리고 있다면서 2000년 이후 개봉된 국내 주요영화 6편 중 5편은 모두 북한 사람들을 ’악인’이 아니라 ’인간’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또 일각에서 한국 정부가 북한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영화와 비디오게임을 검열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으며, 전세계 20개 인권 행사에서 상영됐던 탈북 다큐멘터리 ’서울 트레인’이 유독 서울 행사에서만 상영되지 않은 것을 대표적 사례로 소개했다.

이에대해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이찬경씨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설정은 국민에게 매우 민감한 주제”라며 “위원회의 판매금지 결정은 이 게임에 대한 북한의 비판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 3월 위원회가 스플린터 셀 혼돈이론에 대해서도 금지 결정을 내렸는데 이 게임은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고 서울이 불바다가 되는 내용이라며 이같은 시나리오는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방식에 기초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신문은 그러나 ’불바다’(Sea of fire)라는 말은 지난 94년 북한의 군 장성이 미국과의 핵 회담에 불만을 표시하며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한 것처럼 북한 언론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이라고 주장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