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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6자회담 ‘10.3합의’에 명기된 ‘영변 핵시설 연내 불능화’ 및 ‘핵신고’ 시한이 닷새 앞으로 다가왔지만, 북한의 이행 여부는 불투명하다.
미북은 지난달 5일 5MW 실험용 원자로를 비롯한 재처리시설, 핵연료봉제조시설 등 3개의 영변 핵시설에 대한 불능화 작업에 착수했다. 이후 불능화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비핵화 2단계’를 넘어 ‘북핵 폐기단계’로의 진전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2002년 제2차 북핵위기의 단초가 됐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신고 벽에 부딪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정국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착수한 영변 핵시설에 대한 불능화 작업은 총 10단계 11개 조치로 이뤄진다. 대부분의 불능화 조치가 연내에 완료될 것으로 보이지만 5MW 원자로의 폐연료봉 인출작업은 올해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이달 중순께 시작된 폐연료봉 인출 작업은 방사능 오염 등 기술적인 문제로 통상 100일 정도가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빨라도 내년 2월쯤에야 작업이 완료될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최근 북한이 핵 연료와 냉각탑의 완전한 폐기를 거부하고 있어 미북간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핵시설 불능화 어디서 삐걱대나= 미국은 수차례 사용 전 핵 연료를 없애고 내부시설 일부만 불능화 중인 냉각탑 시설도 폐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불능화 단계 이후 핵폐기 단계에서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입각한 반대 급부를 받고서야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북한은 지난 ‘2.13합의’ 직후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핵 시설 불능화’ 대신 ‘핵시설 가동 임시 중지’라는 표현을 쓴 바 있다.
당시에도 이 같은 표현이 논란이 되기는 했지만 외무성 등의 공식 담화가 아니어서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북한이 핵 연료와 냉각탑 폐기를 거부함에 따라 당시의 표현이 실제 북한의 속내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함께, 미국이 불능화 단계에서 핵 연료와 냉각탑의 폐기를 요구하고 있는 이유는 이 두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 경우 핵시설을 재가동하는 데 3개월밖에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불능화에 대한 규정을 ‘핵시설 재가동에 최소한 1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상정하고 있는 미국으로선 물러서기가 쉽지 않다. 만약 핵 연료와 냉각탑을 폐기하지 않고 불능화 작업이 완료될 경우 미국내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 공화당의 샘 브라운백(Brownback) 상원의원 등은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기 전에 달성해야 할 전제조건들을 명시한 상원 결의안까지 의회에 제출해 놓은 상태다.
◆피할수 없는 UEP 신고 = 조지 부시(Bush) 미 대통령은 지난 5일 방북 길에 올랐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를 통해 김정일에게 성실한 핵신고를 촉구하면서 관계 정상화 의지를 내비치는 친서를 보낸 바 있다.
부시 대통령의 친서에 북한은 “우리도 의무를 다하겠으니 미국도 의무를 다하라”는 구두답변으로 갈음했다. 그러나 신고 시한을 닷새 앞둔 지금까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물론 미국은 연말까지 신고가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하면서도 신고 자체보다는 정확한 신고가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21일 “올 연말까지 (신고가) 이뤄지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면서도 “그러나 중요한 건 (신고) 절차가 올바르게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해 시한을 넘기더라도 핵 목록에 대한 정확한 신고가 중요함을 내비쳤다.
그러나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우라늄농축용 원심분리기에 쓰이는 고강도 알루미늄 튜브 140t을 수입한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UEP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파키스탄의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이 지난해 발행한 자서전을 통해 파키스탄 ‘핵의 아버지’라 불리는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북한에 원심분리기 20기 가량을 이전시켰다고 밝힌 것도 ‘날조된 것’이라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UEP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미국에 자신 있게 건네준 알루미늄 튜브에서 농축 우라늄의 흔적이 발견됐다는 언론 보도가 나와 의혹은 더욱 커진 상황이다.
미국이 북한의 UEP 존재를 집중 추궁하는 이유는 2002년 10월 당시 미 국무부 차관보였던 제임스 켈리가 평양을 방문해 ‘고농축우라늄(HEU)’ 계획을 따지자,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핵보다 더 한 것도 있다”며 HEUP 계획을 간접 시인한 것이 제2차 북핵위기의 발단이 됐기 때문이다.
때문에 미국은 언제부터인가 HEU란 용어도 UEP로 수정했고, 현재는 북한이 ‘과거에 UEP를 추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는 정도로만 시인 하더라도 그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그럼에도 김정일은 신고의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할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머뭇거리는 배경에는 북한이 핵신고 목록에 무엇을 담아내느냐가 향후 부시 행정부 임기 내에 모든 핵을 폐기할 의지가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와도 같기 때문이다. 북한이 과거 핵개발 의혹을 솔직히 고백하는 것은 향후 모든 핵 프로그램을 투명하게 신고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김정일이 핵을 폐기할 의지가 없다고 한다면 UEP 시인은 곧 ‘족쇄’와도 같다. 이는 차기 미 행정부에게 계속된 검증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군정치를 대내외적으로 내세우는 김정일로선 핵무기 없는 체제유지가 가능하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북한이 연내 신고를 앞두고 머뭇거리는 것은 핵없는 체제유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북핵 외교가에선 연내에 신고가 완료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당장 6자회담이나 미북관계가 크게 문제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부시 행정부로선 인내할 수 있는 시간도 그리 길지 않을 것이란 것도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