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北 ‘HEU 진실공방’ 끝장토론 시작되나?

▲우라늄 농축과 핵무기 전환 과정ⓒ연합뉴스

한국과 미국은 북한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도 ‘2·13 베이징 합의’에 따른 핵프로그램 신고 목록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HEU 문제가 향후 6자회담 합의 이행에 최대 걸림돌로 떠오를 전망이다.

지난 13일 베이징 6자회담에서 최종 합의를 도출해 내는 과정에서 미국은 HEU 문제를 명시하려고 했으나 북한 측의 강한 반발로 최종 합의문에서는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6자회담 참가국들은 최종 합의문에 플루토늄 신고는 명기했으나 HEU 프로그램 신고는 넣지 못했다.

미국은 지난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 방북 당시 북측의 HEU 존재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으로 ‘제2차 북핵위기’의 도화선이 됐다. 하지만 북한은 이후 “켈리 차관보가 지나치게 우리를 몰아붙여 감정이 상해서 ‘기존 핵프로그램보다 더 강한 것을 갖고 있다’고 말했을 뿐”이라며 발뺌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그동안 어려운 정제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플루토늄과 달리 HEU는 관련 기자재만 확보하면 핵무기 제조가 쉽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또한 원심분리기를 소규모 비밀장소에 설치함으로써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HEU가 원자로와 대형 재처리 시설이 필요한 플루토늄보다 은닉성이 뛰어나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미국은 이번 2·13 합의에 따라 모든 HEU 프로그램도 신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한은 2003년 4월 독일 회사로부터 HEU 프로그램의 핵심인 원심분리기 제조를 위해 22t의 고강도 알루미늄관 수입을 시도하다 프랑스 독일 이집트 당국에 적발됐다. 당시 미 정보 당국은 북한과 파키스탄 핵 밀매를 증명하는 영수증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미국은 2002년 7월 말 북한이 1990년경부터 비밀리에 우라늄 농축방식의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확고한 정보(solid intelligence)를 파키스탄으로부터 획득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핵기술 밀매 혐의를 받고 있는 파키스탄의 압둘 카디르 칸 박사는 2004년 4월 파키스탄 당국의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1990년대 말 본격적으로 우라늄 농축 관련 장비와 기술을 북한에 넘겼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도 대북 단파방송을 통해 “1996년 가을경 전병호 군수공업담당비서가 나에게 ‘파키스탄과 비밀 협정을 맺어 농축우라늄 기술을 통한 핵무기를 개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따라서 미국은 6자회담의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여야 하고 여기에는 HEU도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CVID)’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HEU에 대한 확실한 검증이 있어야 한다는 미국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그동안 HEU 프로그램 존재에 대해 부인해왔다. 6자회담 북한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13일 타결된 6자회담에서 “HEU 프로그램은 없으며 앞으로 이를 입증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김만복 국정원장은 20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북한이 HEU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고 밝히면서 HEU에 대한 진실공방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한미 등은 북한이 4월13일까지 제출할 ‘핵무기 개발 활동 보고서’에 플루토늄과 함께 HEU, 프로그램도 당연히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6자회담 한국 측 수석대표인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16일 “합의문에 언급된 ‘모든 핵 프로그램’은 플루토늄과 HEU 프로그램을 포괄한다”며 “북한은 HEU 프로그램도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이 HEU 존재 자체를 끝까지 부인할 경우 미국은 북한이 파키스탄에서 들여온 원심분리기에 대한 증거를 제시할 수도 있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미북 양국간 갈등은 불을 보듯 뻔하다. 북한이 미국이 제시한 증거를 순순히 인정할 가능성은 적다. 오히려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며 6자회담 판을 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방한 중인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은 20일 “북한이 끝내 HEU 문제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6자회담을 깰 수도 있다”며 “HEU 문제가 앞으로 6자회담 협상결렬 요소로 등장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때문에 ‘2·13 합의’에 대한 정부 당국의 섣부른 낙관론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북한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시간을 질질 끌면서 미국을 갖고 놀 수 있다”는 페리 전 장관의 지적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결국, HEU 문제에 대한 접근법을 놓고 향후 북핵 6자회담 성패를 가를 수 있는 ‘리트머스’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