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北 협상 착수…“합의 보려는 것 아냐”

미국과 북한이 8일 싱가포르에서 석달 넘게 지연된 핵 프로그램 신고에 대한 해법 찾기에 착수했다.

이번 미국과 북한의 회동은 핵프로그램 신고 문제에 대한 양측의 입장이 최종 조율될 것으로 보여 향후 북핵 6자회담의 전망을 가름할 풍향계가 될 전망이다.

6자회담 미∙북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와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이날 오전 주 싱가포르 미국 대사관에서 만나 핵 신고의 최대 쟁점인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과 시리아와의 핵협력 의혹 등에 대한 이견 조율 작업에 들어갔다.

당초 협의는 오전 10시(한국시간 11시)께부터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김 부상이 회담장에 늦게 도착해 1시간 가까이 지연됐다. 현지 소식통들에 따르면 회담은 미 대사관에서만 진행될 예정이고 회담 직후 힐 차관보가 기자회견을 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힐 차관보는 이날 숙소인 리젠트호텔을 나서면서 “오늘 회동은 어떤 합의(agreement)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몇 달 동안 6자회담의 문제로 작용했던 사항을 협의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해 이번 회동의 결과가 합의문 형식으로 나오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이번 회담전망에 대해 전날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다”고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지만 외교가 안팎에선 미∙북이 핵심 쟁점에 대해 상당한 의견접근을 본 것으로 알려져 타결 가능성이 높게 보는 분위기다.

힐 차관보도 이날 숙소를 나서면서 “(핵신고 문제 외에) 다음 단계에 대한 이야기도 나눈다면 매우 좋은 징조”라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우리 외교당국의 경우 더욱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외교부의 한 당국자는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 어려워 회담결과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전날(7일) 문태영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현재로서는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 6자회담 관련국과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와 함께, 미∙북은 이미 플루토늄 관련 사항은 북한이 정식 신고서에 담아 의장국인 중국에 제출하지만 UEP와 시리아와의 핵협력 의혹은 ‘간접시인’ 방식으로 양측만 공유하는 비공개 양해각서를 통해 신고하는 ‘분리신고’ 방식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간접시인’은 미국이 자신의 이해사항을 기술한 뒤 북한이 이를 적절한 표현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이번 회동에서는 ▲UEP와 시리아 핵협력 의혹 등에 대해 미국 측이 적시할 내용과 ▲이를 받아들인다는 북측의 표현에 대한 최종 조율이 이뤄질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UEP 활동과 핵확산 활동에 개입했다는 것이 미국의 이해사항’이라고 기술하고 북한은 이런 내용을 ‘반박하지 않는다’는 것.

특히 ‘반박하지 않는다’는 제3자적 표현과 관련, 미국 측은 표현수위가 높은 ‘인정했다(admit)’ 등을, 북한은 ‘인식하고 있다(acknowledge)’거나 ‘이해한다(understand)’ 등의 표현을 주장하며 그 동안 신경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회담 이후 힐 차관보는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가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 측에게 이번 회동의 결과를 설명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