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北 제네바회담 ‘허탕’…北核협상 표류하나

북한은 지난 13일 미∙북 제네바 회동에서 미국이 제시한 제안에 대해 현재까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핵 6자회담이 장기 표류될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미국과 북한은 교착상태에 놓인 6자회담 돌파구 마련을 위해 지난 주말 제네바에서 협상을 벌였다. 회담 직후 크리스토퍼 힐 미국 측 수석대표는 “매우 실질적이고 유용한 협의였다”고 밝혔고, 북한 측 김계관 수석대표도 “만족스럽다”고 평가해 진전된 합의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지만 결과적으론 별다른 성과 없이 마무리 됐다.

협상 결과에 대해 워싱턴과 평양의 수뇌부에게 전달됐지만 현재까지 양국의 공식입장이 발표되지 않은 상태다. 미국은 이번 회동에서 신고 형식에 있어서는 유연함을 강조하면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북한에 제안했다. 북한의 대외적인 체면을 배려하면서 내용면에서는 신고를 완벽하게 받아내려는 의도다.

하지만 현재까지 북한은 미국의 제안에 대해 아무런 입장표명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톰 케이시 미 국부부 부대변인은 17일 “북한은 아직 미국이 제시한 방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VOA가 전했다.

또한 협상 결과에 만족하지 못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힐 차관보는 16일 “김계관과의 대화는 좋았지만, 그가 평양과 전화통화를 했을 때 (반응이) 좋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제네바 미·북 회동에서 미국은 북핵 신고의 3대 쟁점인 ‘플루토늄 추출량’과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개발 의혹’, ‘시리아 핵 확산 의혹’에 대해 북한이 공개적으로 밝혀야 한다는 입장에서 한발짝 후퇴, 형식의 ‘유연함’을 강조했다.

美, 핵신고 형식서 유연함 내세웠지만 진전 안돼

외교가에서는 이번 회담에서 미·북이 플루토늄 부분만 북한이 신고서에 담아 6자회담에서 공개하고, UEP와 핵 확산 의혹은 미∙북이 ‘비밀문서’로 공유하거나 양측의 입장을 병기하는 방안을 논의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미국 외교협의회(CFR) 부회장인 개리 새모어(Samore) 박사는 “힐 차관보가 (핵심 의혹인) UEP와 시리아 핵확산에 대해 북한의 ‘간접 시인’을 유도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 같다”고 말했다고 RFA가 16일 보도했다.

하지만 미국이 신고 내용에 있어 ‘완전하고 정확한’ 신고를 요구하고 있고, 북한 역시 핵심 의혹인 UEP와 핵 확산에 대해 여전히 부인하고 있어 내용면에서 양국 간 합의점을 찾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나아가 미국과 북한은 ‘10∙3합의’에 따른 ‘행동 대 행동’ 원칙에 있어서도 이견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미국에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등의 ‘선(先)행동’을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은 핵신고가 전제돼야 한다고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도 17일 “미국이 테러지원국 삭제 등을 통해 ‘적대정책’ 전환에 대한 의지를 행동으로 보인다면 핵 신고를 비롯해 핵문제 해결을 위한 조치에 나설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힐 차관보는 16일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에 관해) 우리의 입장은 변한 것은 없다”며 “북한에 의한 완전하고 정확한 핵계획 신고가 전제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미국과 북한이 신고 내용에 대한 의견차가 분명하고, ‘행동’의 선후문제에 있어서도 이견을 보이고 있어 6자회담이 빠른 시일 내 정상화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오히려 양국간 긴 ‘줄다리기’가 계속돼 6자회담이 장기간 표류될 가능성도 점쳐지는 상황이다.

때문에 미국과 북한간의 핵 신고를 둘러싼 협상은 ‘시간’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대선전 외교적 성과를 위해 최대한 북한과의 대화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되고, 북한은 임기 말이라는 시간 제약에 걸린 부시 행정부의 상황을 최대한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부시 행정부, 임기 얼마 안남아 ‘시한부 외교’

북한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부시 행정부와 진전된 협상을 벌이기 보다는 불능화와 핵 신고를 놓고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북핵 폐기단계인 3단계 협상은 차기 정부와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이에 따라 부시 행정부가 외교적 성과에 집착해 대북정책을 급선회하면서까지 북한과의 핵폐기 협상을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성과를 거두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더불어 김정일의 외교술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기만 했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남북관계도 경색될 가능성이 있다. 이명박 정부가 ‘비핵화 이후 대북지원’이란 원칙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북핵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할 경우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김하중 통일부 장관도 지난 13일 “대외관계를 무시하고 남북관계를 끌고 나갈 형편이 아니다”고 밝혔다.

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 군비통제연구실장은 ‘데일리엔케이’와의 통화에서 “북한은 불능화와 핵 신고와 관련한 협상만 하면서 ‘시간 보내기’를 시도할 것”이라며 “결국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대한 본격 협상은 올해를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 연구실장은 이어 “북한으로서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 미국 대선을 관망할 것”이라면서 따라서 “지엽적인 불능화 조치에는 어느 정도 진전이 될 수 있지만 북한이 비핵화 조치에 성큼 합의할 가능성은 없다”고 덧붙였다.

한 대북전문가도 “미북간 불능화와 플루토늄 산출량 신고에는 어느 정도 합의에 이룰 수 있다”면서도 “핵심 사안인 UEP와 핵확산 문제는 차기 정부의 몫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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