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북한 금융협상 대표단은 31일 오전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이틀째 회의를 갖고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 북한계좌의 불법성 여부와 일부 합법계좌 처리 문제를 두고 공방을 벌였다.
대니얼 글레이저 미 재무부 금융범죄담당 부차관보를 비롯한 미국 대표단은 이날 회의에서 BDA 북한계좌가 위조지폐와 돈세탁에 연루된 혐의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데 이어 북한측의 해명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첫날 1차 회의에서 미국측이 북한의 달러화 위조와 BDA를 통한 돈세탁 혐의를 구체적으로 나열하면서 북측과 탐색전을 벌였다.
글레이저 부차관보는 1차 회의를 끝내고 “지난 18개월 동안 30만쪽에 달하는 문서를 검토할 기회가 있었다”면서 “방코델타아시아에서 ‘골치 아픈 행동’이 많이 일어났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또 “북한의 위조지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미국의 위조지폐 전문가 2명이 이번 회의에 동행했다”고 밝히고, “이들은 위폐문제를 ‘아주 심각한 사안’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오광철 북한 국가재정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북한 대표단은 미국의 이러한 불법시비를 차단하는 증거와 논리를 구사하고, 미국이 불법여부를 명확히 규명하지 못한 계좌를 우선 풀어달라는 요구를 집중적으로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북한이 이번 금융협상에서 ‘불분명한 계좌’에 대해 동결해제를 강력히 고집할 경우 협상에 난관이 조성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또 북한이 6자회담에서 핵동결 등 초기 이행조치에 이은 핵폐기를 위한 추가 요구가 부담스러울 경우 금융협상부터 좌초시키는 전술을 채택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럴 경우 금융협상은 차기 6자회담으로 가는데 ‘지뢰밭’이 될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한 관련국은 BDA 문제와 6자회담은 별개라는 원칙을 세우고 있지만, 대북금융제재 문제와 6자회담이 현실적으로 맞물려 버린 것은 사실이다.
이번 금융협상이 차기 6자회담으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가능성이 일단은 더 커 보인다. 또 한편 이번 금융협상은 미∙북 양측이 베를린 합의를 바탕으로 2월 8일로 확정된 6자회담의 전초전 성격을 띠고 있다. 따라서 양측 모두 상대방을 자극할 수 있는 요구나 발언은 자제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북한이 금융협상 진전에 따라 6자회담에 임하는 자세에 큰 차이를 보일 것으로 예측되는 조건에서 미국도 조심스런 입장을 견지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톰 케이시 미 국무부 부대변인도 30일(현지시각) 미북간의 베이징 금융실무회의에 대해 “방코델타아시아 문제는 많은 추가 작업을 필요로 하는 `장기적인 의제'”라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이미 6자회담을 통한 핵폐기에 접근하려는 의지가 강한 조건에서 논란이 예상되는 부분은 차기 회담으로 넘길 가능성도 있다.
한편 존 네그로폰테 미 국가정보국장은 30일 미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나와 “이번 6자회담의 목표는 북한의 원자로와 재처리 시설의 동결과 국제사찰”이라면서 “외교적 노력이 진전되면 크리스토퍼 힐 동아태 차관보의 방북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잘못된 희망을 심어주고 싶지 않지만, 상황을 진전시킬 수 있다고 낙관할 근거를 어느 정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